[개인회생제도 첫날] 절차 복잡 … '나홀로 접수'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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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생제도 시행 첫날인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를 찾은 사람들이 개인채무회생 업무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 중앙지법에만 이날 하루 300여명이 몰렸다. 김태성 기자

개인회생제도가 처음 시작된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오전 9시 파산부 문이 열리자 "새벽 5시에 나왔다"는 40대 자영업자를 비롯해 30여명이 한꺼번에 사무실로 몰려들어 갔다.

이날 전국 14개 지방법원이 일제히 개인회생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격요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어려워 대부분은 상담만 받고 돌아갔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개인회생 1호 접수자는 30대 국영기업체 직원. 그는 부업을 시도했다가 투자금을 날리는 바람에 7000여만원의 빚을 져 28만원씩 8년간 빚을 갚겠다는 변제 계획안을 제출했다.

8300여만원의 은행.카드빚 때문에 개인회생을 원하는 회사원 김모(32)씨도 이날 낮 12시30분쯤 법원에 나왔다. 그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해왔다. 그러나 순서표를 받고, 법원 직원의 서류 검토를 기다린 끝에 세 시간이 지나서야 접수를 마쳤다. 2001년 회사를 나온 뒤 실직 기간에 주식에 손을 댔다 빚더미에 앉게 된 그는 지난해 재취업에 성공, 현재 중소기업 과장이다. 김씨는 한달 166만원 소득 중 생활비 60만원을 제외한 106만원을 6년7개월간 갚는다는 계획이다. 김씨에게는 다음달 8일로 회생위원과의 면담 날짜가 잡혔다.

김씨처럼 접수가 된 경우 법원이 한달 안에 개시 결정을 내린다. 이후 채권자 이의 기간 등을 거쳐 변제계획안이 최종 확정되면 5~6개월 뒤부터 빚을 갚아나가게 된다.

그러나 별다른 준비 없이 온 사람들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울중앙지법에도 이날 하루 동안 300여명이 몰렸지만 단 8건만이 접수됐다. 이날 전국 법원에서 접수된 것은 모두 49건이다.

곳곳에서 직원과 민원인 간의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식당 종업원 김모(40.여)씨는 "계약직이어서 개인 회생은 힘들 것 같으니 개인 파산을 고려해보라"는 직원의 설명에 "병든 남편을 데리고 알거지가 돼야 하는데 왜 자꾸 파산을 하라는 것이냐"며 화를 냈다. 자영업자 박모(50.여)씨의 경우 각종 증명서를 수십장 떼 왔지만 신청서 작성 요령을 몰라 한 시간 넘게 서성거리다 접수를 포기했다. 그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 앞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법원 측은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자 파산부 법정에 30~40명씩 모아 즉석에서 단체 상담을 하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신청서 양식만 38쪽에 달하기 때문에 서류 준비에 자신이 없으면 변호사.법무사 등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개인 회생 신청의 수임료는 100만~200만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오명근 변호사는 "혼자 힘으로 신청을 원한다면 각종 책자나 인터넷을 통해 관련 정보를 꼼꼼히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개인회생 제도=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채무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일정 기간 성실히 갚을 경우 나머지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 자세한 이용절차는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의 '알기 쉬운 소송' 코너에 나와 있다.

김현경.천인성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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