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현장] 공기업, 애꿎은 신입사원만 볼모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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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입사원을 보면 민망합니다. 우리와 월급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요.”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 양모 과장의 말이다. 이 회사는 올해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20% 가까이 깎았다. 임금을 줄여 채용을 늘리는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일자리가 늘었고, 민간기업에 비해 너무 많은 공기업 임금을 정상화하는 첫발을 뗀 것이니.

문제는 기존 직원. 양 과장은 “임원과 간부들은 세상 눈치를 보느라 임금을 조금 반납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결국 신입사원만 파이를 잘게 쪼갠 셈이다.

올해 정부의 지침에 따라 252개 공기업은 신입사원 임금을 평균 15% 깎았다. 기존 직원 임금은 노사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정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신입사원과 2년차 직원의 임금이 1000만원씩 차이 나는 곳도 생겼다. 내심 정부는 신입사원 임금을 깎으면서 분위기를 잡으면 노사 간에 과도한 임금체계에 대한 개편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공기업 개혁만 놓고 보면 현 정부의 성적은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이다. 정권 초기인 지난해 초만 해도 청와대는 공기업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밀어붙였다. 대선 과정에서 ‘신의 직장’ 공기업을 뜯어고쳐 달라는 국민의 열망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공기업 50여 곳을 민영화하고, 50여 곳을 통폐합하는 야심 찬 개혁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상반기 내내 ‘촛불 시위’에 끌려다니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잔뜩 움츠러든 정부가 여름에 내놓은 게 명칭도 궁색한 ‘공기업 선진화’다. 추진 주체도 청와대에서 해당부처로 바뀌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라고나 할까. 그 뒤 수차례에 걸쳐 선진화 계획이 나오고, 워크숍도 했으나 촛불을 고비로 이미 의지가 한풀 꺾인 뒤였다. 눈에 띄는 성과라고 해봐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친 정도다. 그 사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비리, 낙하산 잡음이 끊이지 않아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공기업 문제는 힘과 의욕이 넘치는 정권 초기에 해결해야 하는데, 이제는 제대로 손대기에 늦은 감이 있다. 세종시와 4대 강 등 뜨거운 현안이 있고,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어 더욱 그렇다. 생존에 강한 공기업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기존 직원이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 나누기, 나아가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애꿎은 신입사원만 볼모로 잡고, 개혁과 고통 분담 시늉을 내는 거라면 기자만의 옹졸한 생각일까.

고현곤 경제정책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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