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쿠바 40년 앙숙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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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과 쿠바의 40여년 간에 걸친 갈등의 역사가 청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하원 공화당 지도부가 27일(현지시간) 쿠바에 대해 의약품과 식량의 수출을 전면 허용하는 법안의 입법에 합의했다.

미 언론들도 쿠바에 대해 강경 태도를 고수했던 공화당의 입장 변화로 양국 관계가 정상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공화당이 입법키로 한 법안은 미 수출업자가 밀.쌀 등의 곡물과 의약품을 쿠바 정부에 무제한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법안에는 또 쿠바 외에도 북한.이란.수단.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은 이르면 이번 주 열릴 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며,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효력을 발휘한다.

공화당의 이번 조치는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가 실익 없이 명분만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국내외의 비난 여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그동안 쿠바가 중남미에서 사회주의의 보루며 카스트로 대통령이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경제제재 완화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민주당과 농부.제약회사 등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로 피해를 보는 것은 쿠바가 아니라 미 기업이라며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에 대해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지위를 부여하면서 중국과의 형평성을 들어 쿠바에 대한 제재도 해제하라는 여론이 고조돼 왔다.

여기에다 PNTR법안에 대해 반대했던 노동계와 재계도 쿠바에 대해선 침묵을 지킴으로써 경제제재 완화에 힘을 실어줬다.

유엔과 유럽연합(EU)도 쿠바 봉쇄 법안인 헬름스-버튼 법안이 치외법권적인 초법조치라고 비난해 왔다.

한편 쿠바 정부는 이번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미국 식량의 쿠바 수출이 자국민의 일상 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쿠바 외무부는 이날 "미 공화당의 입장 변화는 올바른 방향의 진전" 이라면서 "쿠바 경제제재 완화법안이 양국간 교역정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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