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그 후… 학계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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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6.15는 6.25를 앗아갔다. 현실이 역사를 덮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기억을 바람직한 현실에 의해 대체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박명림 하버드 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최근 학계에는 정상회담의 성과와 전망을 얘기하는 학술회의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이 논의에서 학자들은 북한의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상당한 성과를 이뤄낸 회담으로 평가한다.

특히 앞으로의 전망에서 학자들은 ▶이산가족 교류 활성화를 위한 방안 ▶보안법 폐지가 가져다 줄 결과 ▶남북 경협을 위한 경의선 철도 연결 등 심도있고 실질적인 의견을 내놓아 관심을 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통일연구원이 26.27일 '남북정상회담과 패러다임 전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남북관계 전망' 이란 주제로 각각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또 30일에는 세종연구소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개선 전략' 을 놓고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이다. 27일 오후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형중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악순환의 패턴을 종식시킨 회담이었다.

특히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과거와 비교할 때 상당히 변했고 이번 합의를 준수하는 데 나름대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제 북한을 현재의 시점에서 변화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는 의견을 내놓는다.

아세아문제연구소 학술회의 발표자인 이호재 고려대(국제정치학)교수도 남북 신뢰회복에 무게를 두며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관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번 회담이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북한 민족에게 적극적으로 탈냉전적 통일교육을 한 결과를 낳았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고 평가했다.

그는 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고려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양측이 인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이승만 통일 정책을 계승한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 김구.김규식으로 대표되는 남북협상파의 통일노선과 철학을 가진 인물" 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철저한 대책과 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세종연구소 학술회의에서 발표할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남북경협이 이제는 공식적인 경협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남북 교역의 장애물인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 남북 협력을 통해 남포항의 화물 하역시설 현대화 작업,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등이 필요하다" 고 주장한다.

같은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며 "상봉보다는 생사확인, 서신왕래에 비중을 둘 필요가 있으며 장기적인 종합대책을 내놔야 한다" 고 강조한다.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박명림 박사는 "남한 국가보안법의 개정 문제는 한반도 전후 체제의 핵심" 이라고 지적하며 "남한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경우 북한은 반민주적 반인권적 법령과 제도의 개폐에 대한 국제 및 남한의 압력을 받게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통일 문제는 단계적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 "남북 평화보장도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 얘기가 나온 것은 비현실적이며 따라서 6.15통일원칙 합의는 돌출 내지 비약이란 느낌" 이라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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