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의사의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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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그는 출생부터 기구했다. 아폴론이 아름다운 아내 코로니스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활을 쏘자 가슴에 화살을 맞은 코로니스는 숨을 거두며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낳은 것이다.

그는 성장하면서 모든 의술과 약제술을 배워 마침내 명의가 되었다. 그의 능력이 죽은 영웅을 살려내는데까지 이르자 이를 두려워한 할아버지 제우스는 벼락을 내려 손자를 죽게 했다.

신화 속의 이 대목은 의술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의술은 만능일 수 없다는 점이다. 곧 의사는 정해진 범위의 기술을 부여받아 치료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일 수도, 그 이하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의 기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 사람을 치유하는 기술은 제사장(祭司長)의 역할이었다.

제사장들은 '신(神)의 대리인' 을 자임하면서 사람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신의 권능이며 자신들은 그 권능을 대신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의 의술은 돈독한 믿음과의 연계에서만 이뤄졌다.

이집트 초기 왕조시대를 꽃피웠던 사이스 의학교는 신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며, 대부분의 유능한 의사들은 병원과 함께 사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를 돌보기 전 신에 대한 진지하고 경건한 기도로 자신이 지닌 능력 이상의 힘이 발휘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자세가 환자와의 영적 교류를 통해 의술 외적(外的)인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의성(醫聖)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의사 선언' 에서 '어떤 환자는 비록 자신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지라도 단순히 의사의 친절에 대한 만족감만으로 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인술(仁術)도 그렇다.

요컨대 환자로 하여금 의사를 믿게 하는 것이 질병치료에 임하는 의사들의 기본적 자세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요즘 의약분업 조치로 야기된 병.의원 폐업사태를 바라보면 과연 우리 의사들 가운데 환자로 하여금 믿게 하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억울한 점도 있고, 할 말이 아무리 많다 해도 결국 환자없는 의사가 존재할 수 없고 보면 지금의 사태는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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