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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유럽 프레스 포럼] "폴란드 과거사, 복수보다 화해로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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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左)가 폴란드의 언론인.역사학자 아담 미흐니크와 대담하고 있다. 미흐니크는 폴란드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는 무혈혁명의 선두에 섰던 역사적 인물이다. 강정현 기자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사실상 폴란드에서 시작됐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은 점진적인 민주화 개혁의 깃발을 들고 소련 붉은 군대의 개입을 피하면서 공산당 일당체제에 파상 공세를 취했다. 그 결과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70년 이상 계속된 공산주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폴란드에서 시작된 동유럽의 무혈혁명을 벨벳혁명이라고 부른다. 민주화에 열광한 폴란드와 동유럽의 보통 사람들은 지금 행복한가. 민주화의 기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벨벳혁명 최고의 이론가요, 지도자였던 폴란드의 언론인.역사학자 아담 미흐니크가 마침 서울에 와 있다. 중앙일보 주최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48시간의 바쁜 일정으로 방한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미흐니크를 만나 역사적인 증언을 들었다. [편집자]

▶김영희=폴란드의 노동자 계급은 70년 폴란드의 역사무대에 등장해 자유노조운동인 '연대'에 참여함으로써 결국은 폴란드뿐 아니라 동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이들은 지금 벨벳혁명의 과실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국민은 심리적 분열 겪는 중

▶미흐니크=지금은 폴란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이율배반적인 시대입니다. 그때는 연대가 사회적 이슈였고, 특히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큰 사회운동이었어요. 연대 운동으로 사회와 기업 전반에 걸쳐 변혁이 시작된 거죠. 이 운동은 노동자 계급에 희망의 빛을 암시해 줬어요. 연대는 도덕.정신적 차원의 운동으로 출발해 결국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그와 같은 운동이 대중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대중을 희생자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폴란드에서는 높은 실업률과 노령층의 연금 감소 등 사회복지 문제가 심각해요. 폴란드는 민주.독립.개방국가로 순조롭게 이행했고, 경제도 성장했지만 국민은 많은 희생을 치렀어요. 공산정권 몰락 후 그 심리적인 영향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퍼져 있고 아직도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반 대중은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모순은 방대하고 정치.경제.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부패문제가 심각해요. 대중은 그런 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대중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온갖 사회문제와 부조리를 언론을 통해 보고 알기 때문이죠. 그런 현상으로 국민이 심리적인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김=폴란드 국영기업의 사유화는 어느 정도 진척됐습니까.

▶미흐니크= 60% 정도가 끝난 걸로 압니다.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김=시장경제로 가는 과정에서 벼락 부자가 된 계층이 나타나 빈부격차가 많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미흐니크=일부 소수가 엄청난 부를 독점하고 있는 러시아와 비교하면 아직 나은 편이죠. 빈부 격차가 극심한 이른바'러시아 병'은 없지만 폴란드에도 빈부 격차가 등장했어요.

▶김=30년 동안 공산당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르고,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수동적으로 살아온 시민들의 습성을 어떻게 고쳐가고 있습니까.

▶미흐니크=공산주의 시대에는 소련 군대의 지시를 많이 받았어요. 대중의 운동으로 공산화를 이룬 중국.쿠바.유고와 달리 폴란드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강제적으로 공산화됐잖아요. 폴란드 사람 고유의 생각이 아니라 소련으로부터 전달된 사고체계를 받아들인 겁니다. 교육계.노동계 등 모든 계층이 지시에 의해 움직였어요. 어느 누구도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건 분명히 있어요. 일종의 죄수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감옥에서는 매순간 해방되기를 꿈꾸면서도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서 잘 것인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러나 감옥에서 풀려나면 일단은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만끽할 수 있고 행복감에 젖지만 그 다음은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죠.

▶김=에리히 프롬이 말한'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 같은 겁니까.

▶미흐니크=바로 그거요.

▶김=북한을 염두에 두고 묻겠는데요. 동독 최후의 총리 데메지에르는 "공산주의자는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러시아, 기타 동유럽 국가들의 경험에 비춰 옳은 말입니까.

▶미흐니크=이론적으로는 동의해요. 그러나 중국은 자발적인 개혁에 성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북한을 개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 국가니까요.

▶김=폴란드의 포스트-공산주의 체제는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정치적으로는 다원적인 자유민주주의입니까.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고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아닌 제3의 길입니까. 다시 말해 폴란드와 동유럽의 체제는 미국의 모델에 가깝습니까, 독일.영국.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가깝습니까.

▶미흐니크=사회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어요. 경제력이 막강한 독일은 성장을 유지하면서 사회복지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는 독일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요. 성장우선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3년 전 귀하의 소개로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을 인터뷰할 때 그는 스스로 사회적 자유주의자(소셜 리버럴)라고 말했어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사회와 국가가 배려한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그의 말이 맞습니까.

▶미흐니크=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은 폴란드 국민에게 비판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사회적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말장난에 불과해요. 명칭보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알맹이 없는 용어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해요.

푸틴 통치는 독재+민주주의

▶김=폴란드의 벨벳혁명은 귀하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비교할 때 역사적인 의미와 파급 효과를 어떻게 보면 될까요.

▶미흐니크=두 혁명의 차이는 간단해요. 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은 케렌스키의 민주정부에 대항해 독재를 실현시킨 것이었습니다. 케렌스키의 멘셰비키 정부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탄생했죠. 반대로 우리의 벨벳혁명은 독재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실현한 혁명입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완벽한 일당독재를 실현했다면 우리의 혁명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거죠. 민주주의란 항상 불완전한 거니까.

▶김=벨벳혁명에서의 귀하의 역할은 볼셰비키 혁명에서의 트로츠키쯤 됩니까.

▶미흐니크=내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생각지 않아요. 폴란드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위험했어요. 민주화를 위한 기반이나 기구가 없었고 시민사회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붕괴된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정신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나서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때 폴란드엔 민주주의는 없었지만 자유는 있었습니다. 규율이나 질서에 얽매여 있는 일본은 민주주의는 있지만 자유가 느껴지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죠.

▶김=민주화된 뒤 과거에 폴란드를 지배했던 공산주의자들을 처리하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들과 화해할 필요성도 있었겠고 복수하고 싶은 유혹도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췄습니까.

▶미흐니크=나는 복수가 아니라 스페인식 화해를 제안했어요. 프랑코 총통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스페인이 채택한 화해를 모델로 한 거죠.

▶김=소련 제국의 붕괴로 정치.사회.경제체제로서의 공산주의는 끝났다고 하지만 북한에는 김일성-김정일 체제가 건재합니다. 중국.베트남.쿠바도 공산당-노동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고.

▶미흐니크=공산주의가 역사적으로는 끝났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제기한 이슈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김=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인 수법으로 자유언론과 기업인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탈린은 아니라도 브레즈네프 정도는 닮아가는 겁니까.

▶미흐니크=천만에요. 푸틴은 브레즈네프 같지 않아요. 푸틴의 통치방식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반반씩 섞여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러시아의 경제.정치 발전단계로 볼 때 이 같은 통치방식은 불가피합니까.

▶미흐니크=푸틴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됐지만 통치방법이 권위주의적이에요.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과 비슷해요.

▶김=한국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면 보수.반동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합니다. 폴란드 민주화 투쟁에서 비폭력을 주장한 귀하의 전력(前歷)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흐니크=후세인은 이슬람의 스탈린이었어요. 나는 독재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어요. 그러나 후세인 축출 뒤 미군의 행위는 지지하지 않습니다.

▶김=귀하는 "사명(Mission) 없는 저널리즘은 냉소주의고, 이윤(Business) 없는 저널리즘은 파산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신문이 사명과 이윤의 두마리 토끼를 쫓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미흐니크=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한 말입니다. 나는 광고에 큰 비중을 두고 싶어요. 사명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딜레마는 자본주의 시장의 운명입니다.

정치 뜻없어 언론인 변신

▶김=귀하는 폴란드의 민주화가 성공한 뒤 정치를 떠나 가제타 비보르차를 창간해 동유럽의 뉴욕타임스로 성장시켰습니다. 왜 정치인으로서의 큰 꿈을 접고 언론활동으로 방향을 틀었습니까. 정치에 실망한 겁니까, 아니면 언론활동이 민주화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미흐니크=내겐 정치적인 야심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도덕.윤리적 차원에서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거지요. 민주화운동은 꼭 정계에 남아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언론계에서도 가능해요. 나는 신문의 '나쁜(Bad)'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김=비보르차의 성공 비결은 뭡니까.

▶미흐니크=무엇보다 독자의 신뢰를 얻은 거죠. 그리고 신문은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흥미가 있어야 해요.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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