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크로스 보팅 불발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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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백40:1백32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386세대 의원을 비롯한 여야 초선들이 현실정치에 순응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5일 16대 국회의장 선거 뒤 한나라당의 중진의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선거에서 민주.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당지도부의 지침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3당 소속 초선의원이 1백10명으로 전체 의석의 40%나 되지만 그들이 말해온 '신선한 반란' 은 없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는 철저했다.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을 주장하던 민주당 386들은 다 어디 갔느냐" 는 물음이 한나라당에서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도 그만하면 집안단속에 성공한 셈이다. 한때 '교황 선출방식의 자유로운 의장선거' 를 주장했던 '미래연대' 소속 젊은 의원 13명이 독자행동을 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이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의 386출신 한 의원은 "좀 민망함을 느낀다" 고 말했다.

386세대인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도 "선거결과 '소신과 개혁을 외치던 386도 별수 없지 않으냐' 는 비판여론이 형성될까 걱정된다" 며 난처해 했다.

4.13 총선 직후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계파정치 타파, 줄 세우기 거부, 자유투표 관철을 기세등등하게 외쳤던 이들로선 어쨌든 쑥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당지도부의 '특별단속' 을 따른 결과가 나왔기에 "줄 세우기 앞에 무릎 꿇었느냐" 는 비아냥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이유 있는 항변' 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서울출신 초선의원은 "개인적으론 누가 적임자인지 인물비교를 해보고 고민도 했지만 당이 처한 현실이 더 중요했다" 며 "이런 상황에선 자유투표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의회민주주의 바탕은 정당이므로 일단 당론이 결정되면 그에 따르는 게 도리" 라고 말하는 초선들도 적지 않았다.

16대 국회 첫날은 새내기 의원들에게 자유투표의 의욕과 현실의 차이를 실감케 한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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