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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심사평] 흥미진진한 주제 … 기세등등한 글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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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원문학상 본심 심사장면. 왼쪽부터 최원식.김치수.김윤식.김용성.황현산씨. 박종근 기자

제4회 황순원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오른 열 편의 작품은 그 우열을 말하기 어려울 만큼 모두 건실한 내용과 유려한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1차 투표로 김연수 씨와 김영하 씨의 작품을 수상권에 올렸으며, 다시 긴 논의와 함께 이어진 2차 투표에서 김영하 씨의 '보물선'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구효서씨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는 이제까지 문화와 풍속에 내재하는 모순과 운명의 기이한 부침을 이야기하던 그의 주제체계가 탄생과 죽음이 한 점으로 귀소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구성이 공교롭고 문체가 단아하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었다.

정지아씨의 '행복'은 빨치산 출신 양친과 함께 떠난 동해안 여행의 소상한 전말기로 잔잔한 어조가 감동을 준다. 한편으로는 일상의 행복감을 마비시키는 불가능한 소망에, 또 한편으로는 역사적 이상의 시선에는 너무 낯선 일상의 작은 기쁨에, 이 소설은 동시에 의혹의 시선을 보냄으로써 통상적인 이데올로기 소설의 굴레를 벗어난다.

수상작과 함께 긴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김연수씨의 '부넝쒀'는 소설로 쓴 소설론이다. '중국인민지원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는 중국인 점쟁이가 참담했던 전쟁의 한 국면을 설명하면서 간간이 끼워 넣는 '부넝쒀'는 진위가 불분명한 그 이야기를 과장하기 위한 허사일 뿐이지만, 작가가 이 허사를 통해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자각하게 된다는 이채로운 전개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었다. 여기서도 소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역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당연히 겸한다.

수상작의 영예를 얻게 된 김영하 씨의 '보물섬'은 구성이 치밀하고 어조가 힘 찰 뿐만 아니라, 후보작들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한 중심에서 벌어지는 주가조작의 실상과 첨단정보시대의 전설이라고나 불러야 할 보물선 소동의 시말을 한 그물로 후려내는 이 소설에서 심사위원들이 짚어낸 장점은 그밖에도 많다.

사실을 거짓말처럼,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믿게 하는 이 소설의 기세 높은 문체는, 실질가치와는 무관하게 엄연한 현실로 군림하는 주가라는 하나의 유령과, 허망한 꿈이 역사의 가면을 둘러쓴 꼴인 또 하나의 유령으로서의 보물선을 그 자체로써 은유하고 표상하는 효과를 지닌다. 학창시절 한 때 '역사연구회'의 회원이었던 두 주인공의 이후 행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시대의 비극인 이 운명의 파탄이 허황하고 몰역사적인 거품의 삶과 편집광적인 가짜 역사의식의 합작품임을 그것은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깊이가 또한 거기 있다.

◆ 심사위원=김용성.김윤식.김치수.최원식.황현산(대표집필:황현산)

소설가 김영하는…

▶1968년 경북 고령 출생

▶연세대 경영학 석사

▶95년 '계간 리뷰'로 등단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99년 현대문학상, 2004년 이산문학상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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