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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된 짝퉁신발 1만2000켤레 캄보디아 가져가 선물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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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1일 캄보디아 시엠리아프 콕타찬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선물로 받은 운동화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하이원리조트 제공]


11일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의 콕타찬 초등학교. 캄보디아 전통놀이 ‘콕 세이’를 하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북적였다. 상대편이 던진 ‘세이(캄보디아 제기)’에 맞은 6학년 레약(12·여)은 아쉽게 아웃됐다. 콕 세이는 두 편으로 나뉘어 세이를 던져 맞히는 놀이다. 방식이 영락없는 한국의 오자미 던지기다. 상대편이 던진 세이를 잡으면 한 번 맞아도 살 수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맨발이었다. 한참을 뛰어다닌 레약의 발엔 흙먼지가 덮였다. 발바닥엔 돌부리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레약은 “집에 운동화가 없다”며 “슬리퍼를 신으면 불편해 벗고 논다”고 말했다. 뛰고 나면 발에 피가 난다고도 했다. 시엠리아프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김경일 목사는 “운동화는 시장에서 한 켤레에 6달러(약 7000원) 정도 하지만 부모들은 사 줄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를 주로 사용하는 캄보디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24달러(2008년)인 빈곤국가다.

이런 레약에게 새 신발이 생겼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사무총장 전택수)와 하이원리조트(대표 최영)가 벌인 ‘2009 희망의 운동화’ 행사 덕분이다. ‘희망의 운동화’는 국내 운동화를 빈곤국 청소년에게 전하는 운동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재작년과 지난해엔 우간다와 방글라데시의 아이들에게 5000켤레의 신발이 전해졌다.

올해 운동화는 관세청이 마련했다. 상표법 위반으로 몰수한 1만2000켤레 신발을 원칙대로 폐기하는 대신 상표권자 동의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아 기증했다. 불에 탈 운명이었던 ‘짝퉁 신발’이 평화의 선물로 거듭난 것이다. 신발엔 한국 청소년들이 그린 희망의 메시지도 있다. 11월까지 전국 1만5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아이들이 만든 단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들이 탄생했다. 행사를 주관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산하 청소년문화교류시설 ‘미지센터’의 홍광현(40) 사업부장은 “ 그림을 그린 것은 암시장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우리 청소년들에게 빈곤국의 상황을 알리는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희망의 운동화’ 행사는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아트 마일즈 뮤럴 프로젝트(AMMP)’가 시작했다. AMMP 대표 조앤 타필리스(64)는 “한국의 OECD 개발원조국(DAC) 가입을 알고 있다”며 “국제기구·기업·시민단체가 함께한 한국의 ‘희망의 운동화’는 유용한 국제구호 모델”이라고 평했다. 신발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아쿤(고마워요)”이라는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아 캄보디아식 인사를 했다. 스라이 삼(13)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영어 편지를 주기도 했다. 5학년 속찬(여)은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를 안다”며 “금잔디 같은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도 말했다. 12월 캄보디아에 전해진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한국과 캄보디아 아이들을 잇는 희망의 메신저였다.  

시엠리아프=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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