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양재호-조훈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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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시작부터 서로 뒤질세라 속기

(1~21)〓조훈현9단은 2연승인데 양재호9단은 2연패. 성적이 극심하게 갈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曺9단도 흔들리고 있어 후배기사들의 좋은 표적이 되고 있다.

이창호9단이나 유창혁9단 이전의 세대들은 누구나 조훈현이란 인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은 잘 실감나지 않겠지만 曺9단이 바둑계를 휩쓸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였다. 특히 '도전5강' 그룹은 曺9단의 융단폭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케이스. 한세대 뒤의 梁9단은 1990년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하며 빠른 속도로 4인방 근처까지 갔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매번 '랭킹5위' 에 머물러야 했다.

승부세계에선 머무르면 후퇴하는 법. 곧 뒷물결이 밀려왔다. 요즘엔 신진들의 범람에 묻혀버린 느낌마저 준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梁9단으로서는 승부인생의 커다란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5월 24일 오전 10시 한국기원. 두 기사는 가볍게 목례를 나눈 뒤 말없이 마주앉았다.

曺9단은 좋아하는 커피를 홀짝이며 빠르게 5까지. 본래 속기지만 이날은 유달리 빠른 느낌을 준다. 梁9단도 6에서 멈칫했을 뿐 경쟁하듯 빠른 속도로 따라 둔다.

마침 정석은 큰 눈사태형. 속기에다 험한 정석이라 꼭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 것만 같다.

예전에 曺9단이 즐기던 '참고도' 가 속력 위주의 포석이라면 실전의 눈사태형은 전투적인 차이가 있다.

50여년 전 기성 우칭위안(吳淸源)이 개발한 이후 무수한 연구가 이뤄졌으나 요즘도 계속 신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극도로 난해한 정석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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