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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피의 권력자' 낙인 찍힌 앙리 2세의 왕비 다시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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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카트린 드 메디치
원제 Catherine de Medicis
장 오리외 지음, 이재형 옮김
들녘, 630쪽, 2만7000원

여기 한 여인이 있다. 그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욕의 화신'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왕비. 아들 가운데 세 명을 왕으로 만든 어머니. 14년 동안 섭정을 맡으면서 음모와 암살로 얼룩진 밀실통치를 일삼은 장본인. 신교도를 탄압하고 학살을 부추겨 나라를 분열로 몰고간 피의 권력자."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카트린은 프랑스 종교전쟁 당시 신교도에 대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배후 조종하고 아들 샤를 9세를 독살하는 등 피에 젖은 삶을 살았던 잔혹한 마키아벨리주의자로 통해왔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책에서 카트린의 이미지를 '검은 베일 속에 핀 은은한 백합'으로 바꿔놓는다. 지은이는 프랑스 문호 발자크.메리메 등의 증언을 꼼꼼히 따져가며 카트린에 대한 왜곡된 주름들을 '객관 고증'이라는 인두를 이용해 하나씩 펴나간다.

그에 따르면 카트린은 문란한 프랑스의 왕실에 시집와 오래 참고, 많이 용서하며 시련을 견딘 인동초이자 이탈리아에서 피어난 르네상스 문화를 봉우리째 프랑스로 가져와 이식한 문명의 여인이다. 당시 손으로 음식을 먹던 프랑스에 포크를 전수했으며 친정에서 데려온 조향사 비앙코의 손을 빌어 파리에 향수문화를 전파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남겼으며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여성들의 교육을 장려했다.

그런 그가 궁중정치에서는 어떻게 그토록 험한 역할을 도맡았을까? 지은이는 카트린이 금융업으로 유럽의 균형자 역할을 한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으나 결혼 당시에는 가문이 기울어 당시 관행이던 지참금을 한 푼도 들고가지 못했다는 데 주목한다. 대신 가져간 '무기'가 시류에 편승하는 법, 협상술과 외교술, 그리고 권모술수로 정치권력을 얻는 방법 등 마키아벨리주의의 씨앗이었다는 것이다. 카트린은 이 무기를 활용해 남편이 죽은 뒤 벌어진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지은이는 카트린에 대한 그간의 평가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카트린이 왕실과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용한 강경책으로 두고두고 악녀의 낙인이 찍혔지만 막후 타협과 양보, 그리고 문화활동은 나중에 프랑스 발전의 밑거름이 됐음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위 앙리 4세의 카트린 옹호는 주목할 만하다. "불의와 잔인함도 창의적이었던 시대, 배경없는 이탈리아 출신 여인이 시대의 분쟁을 조정하며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게 놀랍지 않은가?"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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