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시민 등친 멕시코 전력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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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중앙광장 앞 레포르마 대로는 요즘 매일 아침 심각한 교통 체증을 앓는다. 빨간 띠를 두른 시위대가 벌써 두 달째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멕시코중부전력공사(LFC) 노조원들이다. 에너지 장관 출신의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10월 12일 전격적으로 LFC에 대해 직장폐쇄 조치를 한 뒤 멕시코연방전력공사(CFE)에 통합시켰다. 이에 따라 LFC 노조원 4만7000명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이들은 매일 오전 시위를 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전력 공급이 그간 이원화 체제였다. 멕시코시티와 수도권은 LFC가 맡고, 나머지 지역은 CFE가 담당했다. LFC는 주로 CFE가 발전한 전기를 받아 멕시코시티 시민에게 공급해 왔다.

문제는 전기료 징수 과정에서 생겼다. LFC 징수원들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기 계량기를 조작한 뒤 집으로 직접 찾아가 돈을 받아왔다. 어떤 징수원은 일반 가정에서 1년간 쓸 만한 전기료를 매달 요구했다. 전기료를 주지 않으면 바로 전기를 끊는다. 무더운 날씨로 냉장고와 에어컨 없이 거의 살 수 없는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과다 청구된 전기료를 내왔다. 식당을 운영하다 이런 일을 당했다는 한 교민은 “완전 날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징수원들은 전기료 과다 청구로 모은 돈으로 꼬박꼬박 노조 조합비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사측이 비리 징수원의 징계를 추진할 때마다 노조는 오히려 조합원을 철저히 보호했다. LFC 노조에 대한 시민의 원성은 점점 커졌다.

그래서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칼데론 대통령의 LFC 직장 폐쇄를 반기고 있다. 그러나 좌파 정당과 언론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는 칼데론 대통령이 LFC 노조를 희생양으로 삼아 분위기 반전을 노린 것”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멕시코 CM대학(엘 콜레지오 데 멕시코)의 후안 펠리페 로페스 아이메스(국제정치경제학) 교수는 “칼데론 대통령이 급작스레 직장폐쇄를 결정한 측면도 있지만 LFC 노조원으로부터 수년간 피해를 본 멕시코시티 시민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멕시코의 LFC 직장폐쇄 사태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달 초 8일간 파업을 벌인 한국철도공사 노조가 생각났다. 파업으로 시민과 산업계는 큰 불편을 겪었다. 소래고 3학년 이희준군은 서울대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인심 잃은 노조의 미래는 없다’는 교훈은 멕시코나 한국이나 똑같다.

멕시코시티에서 강병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