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아시아 영화가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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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2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더 야즈' 를 끝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이 모두 공개됐다.

이에 따라 심사위원장인 뤽 베송 감독을 비롯한 프랑스 여배우 니콜 가르시아.독일 배우 바바라 수코바.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등 심사위원 10명은 칸 근교의 언덕에 자리잡은 빌라에 모여 마지막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심사결과와는 관계 없이 10일간 영화제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의견은 칸영화제를 찾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이 한마디에 집약된 듯하다.

"유럽영화는 늙어가고 있다. 내가 대만.한국, 혹은 이란 영화를 관람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아영화는 양적 성장 못지 않게 수준 높은 작품성으로 문화적 다양성에 목말라하던 현지 영화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시아영화의 강점은 우선 주제의 폭이 넓다는 점이다.

중산층의 소외(에드워드 양 '어 원 앤드 어 투' )에서부터 인간의 귀소본능(사미라 마크말바프 '흑판' ).조국애(장원(姜文) 구이즈 라이러(鬼子來了).지순한 사랑(임권택 '춘향뎐' ).사무라이집단 해체(오시마 나기사 '고하토' )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게다가 아시아 지역 특유의 자연 풍광과 미학, 그리고 극의 긴장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는 뛰어난 카메라워크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작품별로는 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의 '어 원 앤드 어 투' 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40대 비즈니스맨이 겪는 중년의 위기를 축으로 한 가족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은 배반의 연속' 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배우이며 감독인 장원이 연출한 흑백필름 '구이즈 라이러' 도 비극적인 요소와 코미디적인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들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중국인들의 눈물나는 애국심을 그렸다.

하지만 칸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된 인물은 이란의 여감독 사미라 마크말바프. 그녀의 작품 '흑판' 에 담긴 예술적 감각은 20세 감독의 연출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은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격정적인 운명' 과 함께 빼어난 영상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와호장룡'(臥虎藏龍)역시 대만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안 감독이 6년만에 내놓은 중국어 작품이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 사이에 '칸 영화제의 진정한 우승작' '다른 경쟁작 감독들로 하여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작품' 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편무역을 위해 문호를 열도록 강요받던 19세기초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 고유의 문화에 무술을 곁들인 액션영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춰 세계적 히트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칸영화제 심사결과는 현지시간 21일 밤(한국시간 22일 새벽) 황금종려상.심사위원 특별상.남녀주연상.각본상.황금카메라상 6개 부문으로 나눠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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