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비에 춤추는 군수] 3.예산 낭비 무기구매 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년 예산을 타내려면 올해 무슨 무기든 사야 합니다."

매년 국방예산의 분배를 둘러싸고 좀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육.해.공군 장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이런 관행이다 보니 시급하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무기를 구매하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특히 매년 전체예산의 40% 가량을 쓰고 있는 육군에서 필요 이상의 무기 구입이 많다" 고 말했다.

실제로 ▶2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공격헬기 사업▶1조7천억원 규모의 대구경다연장포(MLRS)사업▶1조원 이상 들어가는 K1전차 개량사업 등의 필요성이나 사업시점을 두고 군 내부에서 여러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국방회관에서 공개설명회를 가진 대형 공격헬기 사업에는 미국제 AH-64D.AUH-60.AH-1Z와 러시아제 KA-50.Mi-28, 유로콥터사의 타이거, 남아공 루이발크 등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합참의 영관장교는 "북한에 전차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한미군이 아파치(AH-64)급 공격헬기를 1백대 이상 보유 중이고 우리 군도 5백여대의 헬기를 운영하고 있어 충분하다" 면서 신형전투기의 가격에 맞먹는 대당 5백억원대의 대형 공격헬기를 수십대나 구매하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K1전차 개량사업은 전차의 주포(主砲)를 1백5㎜에서 1백20㎜로 교체하는 프로젝트로 대당 25억원 가량 들어간다. 5백대만 개량해도 1조2천5백억원이다. 하지만 전시에 K1전차가 상대할 북한군의 천마급 전차는 수십대에 불과한 데다 한.미군이 이미 북한 전차를 공격할 다른 무기도 많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전차는 육군의 핵심장비인 데다 주포의 구경증대가 세계적인 추세" 라고 주장했다.

MLRS사업은 구경 2백27㎜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다연장로켓포를 구입하는 계획. 이미 1차로 3천7백억원을 투입해 일부가 도입됐다. 국방부는 2차 사업 추진을 검토 중이다.

MLRS는 발사대에 장착된 로켓포 12발을 동시에 쏘아 45㎞ 이내에 있는 축구장 10개 면적을 삽시간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무기다. 북한의 전차.장갑차 등으로 구성된 기동(機動)부대의 진격을 차단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그러나 한.미연합 지상전력은 북한 지상군을 이미 압도하고 있어 이 무기의 도입이 방위력 증강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무기중개상들은 예산을 둘러싼 군 내의 이런 문제점들을 간파하고 음성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기 일쑤다.

이런 폐단을 고치기 위해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은 최근 "예산제도에 '제로베이스' 개념을 도입, 불필요한 무기구입을 억제하라" 고 지시했다. 즉 전년의 무기도입 규모를 참고로 당해 예산을 짜지 말고 그때 그때 사업계획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공군 K대령은 "최근 전쟁의 패턴이 해.공군 위주의 국지전으로 바뀌고 있다" 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첨단기술장비 위주의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