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진타오 시대] 1. 성장보다 민생에 무게 둘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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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胡錦濤) 시대가 열렸다. 제3세대 지도부의 '핵심(核心)'이던 장쩌민(江澤民)의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후가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250만 인민해방군을 호령하는 중앙군사위 주석이 중국의 실세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때문에 후진타오가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에 올랐어도 여전히 '장쩌민은 OWNER, 후진타오는 CEO'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 경제는 균형성장= 장쩌민 시대의 '고속 성장'은 일단 주춤할 전망이다. 대신 고속 성장의 그늘에 가려 있던 서민들을 보다 더 배려할 것으로 보인다. 장과 후의 출발이 다르기 때문이다. 1989년의 천안문(天安門) 사태를 계기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발탁된 장 앞에 놓인 것은 '개혁개방의 중단없는 추진'이었다. 장은 덩이 주장하는 '선부론(先富論.먼저 부자가 되자)'의 충실한 집행자였다. 반면 후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0%에 달하는 경제 성장으로 경기 과열을 우려하는 시점에 권력을 잡았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연착륙과 빈부격차의 심화 등 성장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쪽에 정책의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이인위본(以人爲本.사람 존중을 근본으로 한다)'의 정신 아래 '3개 가까이' 정책이 대표적이다. '3개 가까이'는 '실제와 가까이''군중과 가까이''생활과 가까이'를 말한다. 후가 집권 초기 언론에 요구한 내용이다.

◆ 근린외교= 장은 외교의 모든 것을 미국에 맞췄다. 그러나 후는 상대적으로 아시아 등 이웃 국가와 유럽에 두는 경향이다. 장은 천안문 사태 때문에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닥뜨렸고 이를 어떻게 푸느냐에 외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나 중.미 관계가 회복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따라서 중국 봉쇄를 바라는 미국의 포위 전략을 깨고 중국의 부상에 불안해하는 이웃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적 부상)'를 외교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특히 후의 아세안에 대한 구애는 각별하다. 그래서 광시(廣西) 장족(莊族) 자치구의 성도(省都)인 난닝(南寧)을 '아세안 10개국+중국 1국' 포럼의 영구 개최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후는 국가주석에 오른 뒤 아직 미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벌써 두차례나 순방했다.미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 파고 약해질 양안(兩岸)= 대만과의 관계는 강성이던 장의 퇴진으로 한결 부드러워질 전망이다. 장은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에 필적할 업적으로 '조국 통일'의 대업을 꿈꿨었다. 때문에 양안 간엔 긴장이 상존했다. 그러나 후는 대만과의 문제 또한 현실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만 경제인들의 대륙 투자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대만과의 인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 동북공정(東北工程)=후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 초반까지 티베트 자치구에서 당서기를 하는 등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사 왜곡 분쟁 등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선 지금보다도 섬세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에 대한 한국 내 분위기가 극도로 악화하자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편지를 보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 북한과의 관계=전통적인 혈맹관계보다는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라는 특징을 더 많이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장은 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선택했고 내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편치 않게 생각해 왔다. 후는 북한에 그런 빚이 없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감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 합리적.이성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후와 김 위원장 모두 1942년생 동갑내기다. 북한의 선택에 따라 양국관계는 의외로 호전될 수도 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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