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리 잇단 실언…총리 자질론 지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말이 많아 야단만 맞고 있습니다." 16일 저녁 도쿄(東京)에서 열린 자민당 모리(森)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장.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는 스스로 다변(多辯)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말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 며 언론으로 화살을 돌렸다.

"일본은 천황 중심의 신의 나라" 라는 발언을 부정적으로 보도한 데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모리는 이날 밤 "본의가 아니다. 오해를 준 데 대해 사과한다" 고 밝혔다.

튀는 말과 뒤이은 사과는 역사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총리 취임 후 두달도 안돼 가벼운 입이 수차례나 도마에 올랐다. 설화(舌禍)가 정국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정치평론가들의 취임 전 예상 그대로다.

지난 14일 NHK와 가진 회견에서는 멀쩡한 정치선배를 고인으로 불렀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치철학을 언급하면서 "돌아가신 사카타 미치타(坂田道太.83)전 중의원 의장한테서 타인을 먼저 …" 라고 말했다.

회견을 보던 사카타의 부인은 깜짝 놀랐다. 사카타한테 "당신 죽었어요" 라고 말을 건네자 사카타는 "그런가" 라며 웃어넘겼다고 신문은 전한다.

모리는 다음날 전화로 사과를 했다. TV아사히는 16일 뉴스에서 "사과치고는 매우 빨랐다" 고 꼬집었다.

14일에는 오키나와(沖繩)현에서도 머리를 숙였다. 올 3월 "오키나와의 교직원 조합은 공산당이 지배해 뭐든지 정부.국가에 반대한다. 2개 지역신문도 마찬가지" 라고 했던 발언을 사과한 것이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관방장관의 총리 임시대리 지명문제를 놓고 답변을 잘못해 정정하기도 했다. 기자들한테 "취침.기상시간에 대해 거짓말을 해도 되지 않느냐" 고 한 것도 물의를 빚었다. 총리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싣는 것은 신문들의 오랜 전통이었다.

지난 1월 자민당 간사장 때는 에이즈 환자를 멸시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참모들이 말 때문에 마음을 졸일 만도 하다.

어휘가 빈약해 '보캬빈' (Vocabulary+貧)으로 불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총리와 너무 대조적이다. 잇따른 실언, 부적절한 발언은 총리 자질론까지 언급될 정도다.

17일 일본의 모든 주요 일간지가 사설에서 총리의 경솔함을 다뤘다. 식견 부족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와타나베 고조(渡邊恒三)중의원 부의장은 문예춘추(文藝春秋) 6월호에서 "모리한테는 철학이나 식견이 없다" 고 했다. 차기 총선서 총리 자질론은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