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위손' 남강고 정성조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서울 남강고 영어교사 정성조(鄭聖朝.39)씨는 점심시간이면 이발사로 바뀐다.

하얀 가운에 빗과 가위를 들고 머리를 깎는 모습이 영락없는 진짜 이발사다.

18년 전 부산에서 군복무할 때 내무반 이발병이었던 鄭씨가 다시 '가위' 를 꺼낸 것은 교사생활 12년째인 지난해 9월,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맡으면서다.

학생들의 교내 생활과 복장.두발 상태를 점검하던 鄭씨는 가정형편으로 이발을 못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두발 상태가 불량한 학생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鄭교사는 아예 왕년의 주특기를 살리기로 했다. 사비(私費) 20만원을 들여 이발용 의자.거울.가위를 구입했다. 학생부실 옆 빈방에 '이발소' 도 차렸다. 운영시간은 점심시간과 방과후. 이용 고객은 학생이면 OK. 요금은 없다.

처음에는 꺼리던 학생들도 솜씨가 알려지면서 몰리기 시작,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우선이다. 앞으로는 1천원 정도로 유료화해 장학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가위손' 교사의 출현은 학생들의 두발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鄭교사는 "한창 멋부리고 싶은 나이라 교묘하게 규정(앞머리 5㎝)을 어기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단정한 머리칼의 편안함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영종 교장은 "학생들의 용모가 단정해지면서 학교생활도 반듯해졌다" 며 "봉사활동에 스스로 참여하는 학생들도 크게 늘었다" 고 말했다.

鄭교사는 이발소를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의 장소로 키워갈 생각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머리만 깎는 것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를 깨닫도록 유도하겠다" 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