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얼룩진 순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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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정의 달' 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고백' 이 태평양 이쪽저쪽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쪽 전직 고관의 사랑이 비리혐의와 뒤얽혀 언론의 추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데 반해 저쪽 거물정치인은 난치병을 진단받은 뒤 복잡했던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듯한 자세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미국 정계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극도로 싫어하는가 하면 열렬한 지지자도 많다. 시장 재직 중 그의 최대업적은 치안수준을 향상시킨 것이다.

불결과 위험으로 악명 높던 뉴욕 지하철을 깨끗하고 안전한 곳으로 바꿔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경찰력 강화정책은 간간이 유색인 오인사살로 물의를 빚는 등 인권탄압의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그의 소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치안이 있고 난 뒤에야 '인권이고 나발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일찍부터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 줄리아니 시장과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부인의 대결이다. 클린턴 정권 8년에 대한 평가의미 때문에 민주-공화 양당의 수뇌부가 긴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두 후보 모두 강렬한 반대와 지지를 함께 끌어모으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도 높다.

아직 공식결정되지는 않았지만 힐러리에 대항할 만한 공화당 후보가 줄리아니뿐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줄리아니가 전립선암을 진단받았다는 지난주 발표는 이 긴장국면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공직생활에 지장없는 투병방법만 찾아내면 정상적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결의는 지지자들을 고무(鼓舞)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주에는 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16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투병생활로 접어드는 이제 '아주 좋은 친구' 인 한 여인과의 관계를 지금까지보다 더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리라는 설명이다.

저명한 방송인이기도 한 부인 도나 하노버보다 나이도 많은 한 평범한 여인에게 돌아서겠다는 것은 자기 말대로 '정직하고 진실한' 인생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원의원 선거 포기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정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 여성 보좌관과 염문을 뿌렸던 몇년 전과 달리 인간적 고뇌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 중 '더 순수한 사랑' 을 꿈꾸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한번 선택했던 상대라도 살아가며 온갖 궂은 일에 얽히다 보면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했었던가"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이런 회의감을 자기반성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절제한 욕망으로 분출하는 사람이 있다.

그 욕망의 분출에 사회적 신분까지 이용하면 오히려 '더 더러운 사랑' 을 이루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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