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회담에 대한 미국의 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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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상 처음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변 관련국들의 관심이 높다.

특히 한.미 양국간에는 고위 책임자들의 빈번한 접촉이 이뤄지고 있고 미국의 셔먼 대북정책 조정관은 한국을 방문해 정부측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

셔먼 조정관은 정상회담의 성사를 극구 칭송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측 입장에 이해를 표해줄 것을 기대하는 성명을 발표해 한.미간에 어떤 견해차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걸리는 대목이다.

대북문제에서 정부가 항상 미국측과 긴밀한 협조 아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대북정책 추진방향과 미국의 그것이 항상 똑같을 수만은 없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미국의 주요 관심은 그들의 세계전략상 핵.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의 억제가 최우선 과제다.

분단체제의 당사자인 우리 역시 북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문제해결 방법에 있어 미국측은 지나치게 미국 위주다.

미국으로서는 이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가동하는 등 북한의 핵개발 억제노력이 진행 중이고, 또 미사일협상도 계속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측이 이 문제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랄 것이다.

미국측은 핵이나 미사일개발 중단에 대한 확실한 사전보장과 대북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비춰진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관한 평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위협을 줄이는 방법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즉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국제적 협력 속에 공동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것이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가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정착과 긴장완화에 대해 포괄적으로 지적하고 이미 공동 발표한 비핵화(非核化)원칙, 그리고 무력사용 금지를 규정한 남북 공동합의서를 재확인하는 것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언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도 이같은 시각에 대해 신축적인 이해를 가져야 하며 12일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도 이런 점이 충분히 감안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북정책과 같은 국제적 협조를 얻어야 하는 문제에 있어 정부측도 충분한 사전 설명과 의전적 절차를 고려함으로써 쓸데없는 의심과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 관련국들도 우리의 첫번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는 여건을 조금이라도 허물어뜨리는 발언이나 주문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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