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예금등 '저축성'으로 돈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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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돈이 은행신탁 및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에서 빠져나와 정기예금 등 은행의 저축성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은행신탁의 경우 주식시장의 침체로 원금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고 투신사 수익증권은 오는 7월로 예정된 채권시가평가제와 2차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불안요인 탓에 수탁고가 줄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에는 주로 만기가 짧거나 수시로 돈을 꺼낼 수 있는 상품으로 돈이 몰렸지만 3월 이후엔 만기 1년 등 비교적 장기상품으로 돈이 흘러가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은행 저축성 예금 인기 최고〓4월 이후 5월 6일까지 은행 신탁에선 6조9천억원, 투신사 공사채형 수익증권에선 9조4천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은행의 저축성 예금은 무려 12조9천억원이나 늘어났다.

그결과 올들어 저축성 예금은 모두 40조4천3백억원이 증가했다.

김성우 외환은행 자금담당 상무는 "은행.투신의 실적배당 상품에서 무더기 원금손실 사태가 나면서 고객들이 안전한 은행예금으로 몰려들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얼마전만 하더라도 부동자금이 단기 예금에 주로 머물렀으나 최근엔 투신 구조조정이나 증시 하락추세 등으로 인해 1년 이상 장기 예금으로도 시중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고 덧붙였다.

실제로 9일 현재 은행권(제일은행을 제외한 10개 시중은행 기준) 정기예금 잔액(1백24조1천1백44억원) 중 만기가 1년 이상인 정기예금은 69조7천7백97억원으로 전체의 56%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장기예금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전반적으로 저금리 체제이지만 장.단기 금리차가 많이 벌어져 장기 예금의 금리가 그나마 유리한 데다 ▶지난 3월부터 시판에 들어간 주택청약예금이 일반 정기예금보다 다소 높은 금리를 제시해 6조8백억원이 새로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 부작용은 없나〓기업들이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단 주식시장의 실탄 격인 고객예탁금이 4월 이후 6일 현재까지 1조3천4백억원이 줄었고 순수 주식형 수익증권(하이일드.CBO펀드 제외)도 1조9천억원 가량 감소했다.

점점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또 은행신탁과 투신 공사채형 수익증권에서 돈이 빠지면 그만큼 회사채를 사줄 세력이 줄어들게 된다.

동양증권 김병철 채권팀장은 "은행 저축성 예금은 돈이 몰리더라도 BIS비율 등을 고려해 채권투자를 하기 어렵다" 며 "회사채 시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최근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을 더 선호하고 있다.

만일 가계대출로 나간 돈이 소비증가로 이어질 경우 인플레 등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한편 은행권 예금 증가세는 은행별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내년부터는 원리금을 합쳐 은행별로 최대 2천만원까지만 예금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국민.주택 등 이른바 우량은행에는 예금이 크게 늘어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은행들은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하반기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분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은 데다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 수탁고가 증가세로 돌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

한국투신의 이윤규 채권운용팀장은 "채권 시가평가제가 시행되면 채권가격이 그날 그날 반영돼 위험이 커지고 과거처럼 수익률 보장행위 등이 사라지게 된다" 며 "고객들이 채권형 수익증권에 투자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돈이 흐를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들은 "부동산 관련 규제가 여전히 많은 데다 정책변화도 심해 불확실성이 크고 최근엔 실수요자 중심의 일부 지역 아파트를 제외하면 가격변화가 없는 상태여서 당분간 돈이 몰릴 가능성은 없다" 고 분석한다.

결국 하반기에 2차 금융구조조정 등이 마무리돼 시장의 불안요인이 사라질 때까지는 우량은행들은 돈이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송상훈.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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