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일본, 합의 깰거면 … ” 정상회담 거부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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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沖縄)의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 이전을 둘러싼 미·일 갈등이 양국 정상회담과 외교협상을 일시 중단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런 와중에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상이 일본의 책임론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파문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미 ‘정상회담 거부’=미국은 기후회의가 개최되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8일 열릴 것으로 예정됐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 총리 간 정상회담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NHK방송은 9일 미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기존 미·일 합의에 기초해 오키나와 현내 이전을 추진하는 거라면 만날 용의가 있지만 연립정권의 과제 등 국내 사정을 설명하는 자리라면 시간낭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합의를 지키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확답이 없는 한 정상회담 실현은 어렵다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18일 코펜하겐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관한 최종 결정을 늦출 수밖에 없는 일본 국내 사정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할 예정이었다.

◆일본도 “각료급 회의 중단”=8일 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미·일 양국이 진행해온 각료급 회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 안에서 논의가 마무리되면 미·일 실무회담은 아예 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미국이 지난달부터 해온 미·일 동맹협의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일본에 통고한 데 대한 받아치기인 셈이다. 미국은 4일 도쿄에서 열린 미군기지 이전 2차 실무회담이 아무런 진전이 없자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미·일 동맹협의회의 연기를 발표했다. 동맹협의회의는 내년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 50주년을 앞두고 전후 최대의 우방 관계를 형성해온 두 나라가 동맹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협상이다.

◆일 방위상은 엇박자=9일 괌을 방문해 현지의 미 공군기지 등을 시찰한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일 정부가 이 문제의 결론을 늦추는 것과 관련, “주일미군 재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본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교도(共同)통신은 “협상 당사자인 각료가 일본의 책임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나를 믿어 달라”던 하토야마 총리 발언에 기대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이달 들어 공개적으로 일본 고립전략을 펴고 있다. 기후회의를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전화 외교를 하면서도 하토야마 총리를 제외했다. 또 주일 미국대사는 일 외상에게 “뒤통수를 쳤다”는 감정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오카다 외상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연내에 결론을 내자”고 설득했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18일 기후회의 정상회담 이전에 논의를 마치고 미국 측에 전달하겠다”는 애매한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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