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국 교육, 개천에서 용 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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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건강한 사회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많아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도 교육으로 인해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그러한 사회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가난에서 벗어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그 자녀들은 사교육 시장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사법고시로 대표되는 신분상승의 기회도 상당한 돈을 쏟아 부어야 되는 로스쿨 제도로 인해 그 기회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대학입시에서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되는 수능시험도 1년에 한 번의 기회밖엔 없다. 게다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다른 대학으로의 편입 기회가 거의 없어 입학 후 자동으로 졸업이 보장된 한 대학에 안주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신분상승 기회의 축소는 우리나라가 건강한 사회로 가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다. 대학입시에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거나 중·고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았던 학생들도 대학에 입학한 후 열심히 공부해 편입학이라는 학사제도를 통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학으로 소속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능력이 부족해 보였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늦게나마 자신의 학업능력을 꽃피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지 않는가.

편입학을 확대하고 시스템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있다. 먼저 대학교에서는 편입제도의 폭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입시라는 한 번의 기회에만 매달리지 않을 것이며 대학입학 후에도 더 나은 대학으로의 편입을 위해 자기 개발을 꾸준히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입학만 하면 자동으로 졸업이 되는 그러한 시대를 이제는 마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사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 학생들의 성적을 엄격히 매겨 탈락하는 학생들이 속출해야 한다. 졸업이 입학보다 더 어려워져야 한다는 얘기다.

교과목의 인기영합주의나 학생들의 취업과 관련해 파생된 학점 인플레 현상은 학생들이나 교수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교수는 학생들의 눈치를 살펴 학문의 소신을 펼치지 못하고,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학점으로 졸업해 해외 유학이나 취업 때 학업성적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교수들이 학점을 엄격히 관리해 탈락하는 학생들이 속출해야 대학사회가 그만큼 더 긴장할 것이며, 교수 역시 이에 걸맞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강의를 진행할 것이다. 대학입학 후 열심히 노력해 우수한 성적을 취득한 능력 있는 학생은 편입학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활용해 원하는 대학에 재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일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사회의 건강함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우리의 교육열은 대학입시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굴곡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비해 미국의 교육은 그 신분상승의 기회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계속 주어진다.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의 학업능력을 향상시킨 학생에게는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할 기회가 언제든지 주어지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편입생이다.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4년제 대학으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2년간 수학한 후 아이비리그 소속의 컬럼비아대로 편입했다. 정치학과 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수도승처럼 공부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필자는 대기만성이란 말을 좋아한다. 처음엔 평범한 사람도 다양한 기회를 활용해 꾸준히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을 평가하고 존경하는 건강한 사회로 우리나라가 거듭나기를 바란다.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한 이유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면 질수록 더욱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만기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