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토지반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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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토지소유를 둘러싼 흑백간의 충돌로 짐바브웨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9일 케냐에서 수백명의 흑인들이 백인 소유의 농장 두 곳을 습격했다.

케냐 정부는 즉각 "개인재산은 보호돼야 한다" 고 선언했다.

그러나 흑인들의 폭력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의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 등 유럽 각국은 무장병력 투입을 공언하며 아프리카내 백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폭력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흑인들의 폭력은 정치적 해방을 이뤘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도 소수 백인들에 의해 예속돼 있다는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어서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 실태〓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1960년대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정치적인 독립을 달성했다.

그러나 토지나 광산 등 핵심적인 부(富)의 원천은 여전히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식민 종주국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독립시키면서 그 지역에 살던 백인들의 토지나 광산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도록 독립국가들에 강요했기 때문이다.

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짐바브웨는 인구의 0.6%에 불과한 백인이 경작 가능한 토지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나미비아에서는 토지의 44% 이상이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한 백인들에게 집중돼 있다.

모잠비크나 스와질란드 등에서는 토지는 물론 다이아몬드 광산 의 대부분을 백인들이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4년 넬슨 만델라가 민선 대통령에 당선돼 흑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토지 중 85%는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소유다.

만델라의 당선 전까지는 흑인은 토지를 사는 것도 불가능했다.

96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가 공식 폐지된 뒤 흑인들의 토지 소유는 가능해졌지만 실제로 토지를 구입한 사례는 거의 없다.

말라위와 잠비아.케냐 등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 국가들이 비슷한 처지다.

이에 대해 세계은행(WB)아프리카 토지개혁 사업국의 로지에르 반 덴 브링크 국장은 "아프리카는 농업사회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경제력이 농업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빈손뿐인 흑인들이 토지를 구입할 만한 부를 축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 전망〓아프리카 각국은 정부예산으로 백인들로부터 토지를 사들여 흑인들에게 재분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질병과 기아대책으로 쓸 예산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흑인들은 따라서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면 폭력으로 백인 소유 토지를 점거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짐바브웨의 흑인 농민 부스는 "백인들이 1백년 전 우리 선조들로부터 총칼로 땅을 강탈했는데 이제 법을 내세워 돌려주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된다" 고 주장했다.

남아공의 위트와터스랜드 대학의 새드랙 구토 교수는 "유럽 각국의 성의있는 지원이 따르지 않으면 폭력사태의 확산을 막을 뚜렷한 방도는 없다" 고 단언했다.

그는 "백인에게 집중돼 있는 토지소유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아프리카가 '빈곤과 질병의 검은 대륙' 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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