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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물든 '음란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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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터넷이 음란물로 청소년들을 물들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젠 초등학생들도 인터넷의 음란언어에 멍들고 있다.

▶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음란 사이트 보고서의 일부 내용. 왼쪽은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41세 남자가 10세 여자 어린이에게 친구 하자며 만나기를 제의하는 채팅 대화 내용. 오른쪽은 성 행위를 동영상으로 방영하고 있는 채팅방.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임선희)가 "초등학생들의 음란성 언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우려할 정도다. 국무총리실 소속 청소년보호위는 이런 실태를 조사해 '인터넷 모니터 종합보고서'를 만들어 국회 신학용(열린우리당)의원에게 제출했다.

초등학생이 자주 드나드는 유명 인터넷 사이트 21곳을 모니터한 결과다. 모니터 결과를 담으려니 내용이 너무 낯뜨거워 보고서 자체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란 딱지를 붙였다.

보고서가 지적한 인터넷 사이트의 문제점은 회원 가입시 부모 동의를 받지 않는 사이트(21개 중 6개)가 많다는 점이다.

더욱이 보고서는 "부모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된 사이트들도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 아이가 많아 부모 동의서란에 어린이들이 대리 작성을 쉽게 할 수 있게 돼 있다"고 허점을 적시했다.

쉽게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일부 어린이는 사이트 채팅방에서 음란 게임 등을 즐기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음란 언어를 거르는'단어 필터링'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사이트가 많은 데다 다른 유해 사이트와 연결된 곳도 세개나 발견됐다.

서울대 교육학과 우용제 교수는 "나도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e-메일과 메신저 등을 통해 음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정말 걱정된다"면서 "이걸 적절하게 막을 수 있는 건 국가권력뿐"이라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도 "부모가 컴맹.넷맹이라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아이들의 단골 채팅 사이트와 채팅 아이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 소장은 "교육을 통해 자제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업계와 국가가 필터링과 모니터링을 통해 음란물을 최대한 차단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모든 채팅 사이트에 어린이는 밤 10시 이후 접속이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어린이가 특정 채팅 사이트에 가입할 때는 (업체가) 부모와 직접 통화하거나 서면 또는 팩스로 부모의 가입 동의서를 받은 경우에만 승인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야후'의 경우 채팅에 가입하려면 부모에게 e-메일로 동의서를 보내 부모가 동의하면 회원 자격을 주고 있으며 ▶'유니텔'의 어린이 코너는 밤 10시 이후면 접속이 불가능하다며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 음란 사이트 실태=보고서는 "과거와 현재 어린이들의 놀이문화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과거는 소꿉놀이였으나 현재 사이버상에서의 놀이는 성인들의 축소판"이라고 전했다. '술집놀이' '기생놀이' '호텔놀이''변(태)짓놀이'에 심지어 '성폭행 놀이'까지 유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팅방이 대부분 연령 파괴 형식으로 돼 있어 어린이들이 성인들과 채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고서엔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41세 남자가 10세 여자 어린이에게 만나자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대화 내용도 적시돼 있다. 보고서는 "일부 어린이의 음란 대화는 어른들도 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어린이들이 술집 방문 경험이 없을 텐데 술집놀이 대화 내용을 보면 성인인지 초등학생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능숙하다"고 개탄했다.

강민석.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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