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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호 전국방 중앙일보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5일 인터뷰>

- 건강은 괜찮은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몹시 힘들다."

- 린다 김의 로비가 합법적이었다면 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호텔에서 단둘이 만났나.

"공개적인 로비 활동은 아니었다. 다만 백두사업과 관련한 장비의 납품가를 최대한 깎기 위해 린다 김을 이용하려 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일이었던 게 맞다."

- 린다 김과 당신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데….

"처음 만난 이후 나를 '존경한다느니, 좋아한다느니' 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종택(鄭宗澤) 당시 환경부장관이 '내 조카며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 하길래 정말인 줄 알고 호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이용하기 위해 치밀하게 접근한 것이다. 영악한 여자다. "

- 린다 김을 처음 만난 게 1996년 3월이었나. 그해 4월 초에 상당한 개인 감정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에 만난 것 아닌가.

"3월에 처음 만났다.사실이다."

- 어떻게 그렇게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나.

"린다 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 같은 게 있다."

- 정종택 전 장관 외에 다른 사람들도 李장관에게 린다 김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

"김윤도(金允燾)변호사.황명수(黃明秀)당시 국회 국방위원장 등으로부터도 린다 김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대통령 측근 인사와 국방위원장이 그녀와 식사 자리를 만들어 나를 불러내는가 하면 '린다 김은 엘리트 사업가로서 믿을 만한 사람' 이라는 취지로 말하는데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나. "

(李씨는 金변호사와 黃전국방위원장 등에 대해 가급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계속 밝혔다. 좋지 않은 일인데 다른 사람들을 거론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 대통령 측근인 金변호사가 사실상 린다 김을 적극 지원해 부담을 느낀 것 아닌가.

"金변호사가 대통령에게 나에 대해 말이라도 한마디 잘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

- 黃국방위원장이 린다 김을 도와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여러번 한 것도 사실인가.

"맞다.다만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한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전화를 걸어 왔던 것은 기억이 희미하다. "

- 중앙일보(5월 4일자 3면)에 전문이 공개된, 린다 김에게 보낸 96년 4월의 편지를 보면 린다 김의 로비 활동을 지원한 구체적 내용이 계속 나온다.

(李씨는 편지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첫째 페이지는 백두사업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가격인하를 요구한 문서를 미국측이 계속 갖고 있어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답장 시한이 임박했으니 가능하면 가격인하 작업을 빨리 추진하면 좋겠다▶자신을 갖고 노력하라는 등의 의미였다는 설명이다.

둘째 페이지는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사업과 관련한 것으로 결국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측에 린다 김을 이스라엘측 에이전트로 활용해 주도록 요청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 이스라엘 업체가 린다 김을 에이전트로 고용하도록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측에 요구하고, 린다 김을 통해서만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면 그게 도와준 게 아니면 뭔가.

"이스라엘측 에이전트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왕이면 린다 김을 고용하도록 말해 준 것이다. 어쨌든 린다 김을 도우려고 한 것이 맞다. "

- 백두사업과 관련한 장비의 납품가를 깎는 문제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추진할 일이지 장관이 개인적인 연애 편지에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은 미국 회사에 대한 린다 김의 입지를 강화해 주고, 린다 김에게는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96년 7월 기무사가 린다 김의 불법 로비 활동에 대해 내사했는데.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내사한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 기무사 내사는 당신과 린다 김의 불륜 관계 등을 상세히 적은 투서가 청와대에 접수돼 시작됐다.

기무사령관이 형식적으론 장관에게 조사 착수를 보고한 것이지만 사실은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통보하면서 장관 해명을 들으려 한 것 아닌가.

"맞다. 나의 지시가 없었어도 기무사는 조사해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했어야 하니까. 그런 셈이다."

-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사업과 관련해 린다 김을 도와준 바 없다는 증거로 결국 이스라엘 업체가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업체의 탈락은 현직 국방부장관과 린다 김의 관계, 이스라엘에서 린다 김이 성능평가단을 지나치게 접대한 것 등에 대한 투서가 물의를 빚은 게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

또 장관은 대우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그 뒤 도와줄 수 없었던 것 아닌가.

"맞다. 투서 파문이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다. "

- 정리하자면 백두사업과 관련해서는 린다 김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기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사업 마무리 단계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와준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사업과 관련해서는 외국 회사와 연결해 주는 등 열심히 도와주던 중 투서 사건이 터지고 구속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맞나.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그렇다. 인정한다."

- 린다 김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나.

"절대 받은 적 없다. 린다 김이 돈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로비를 한다는 사실을 나도 나중에 깨달았다. "

- 그렇다면 돈도 받지 않았고 다른 특별한 사유도 없는데 장관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린다 김을 발벗고 도와준 이유가 뭔가.

"…. "

- 린다 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소중히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자' 는 말과 함께 '지난번의 드라마틱한 사건'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란 게 뭔가.

또 두 사람의 관계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 "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가진 것 아닌가.

"…. "

- 편지 등 관련 자료를 보면 린다 김과의 관계가 보통 이상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가진 게 사실 아닌가.

"…. "

(이 부분에서 취재팀과 李씨는 10여분 동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李장관은 "린다 김과 한차례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가졌다" 고 시인했다.

李씨는 관계를 가진 시기를 처음엔 백두사업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 결재 이후인 96년 7월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엔 이미 린다 김이 기무사의 내사를 받고 있을 때였고, 李씨가 린다 김의 로비활동을 도와준 이유가 남녀관계 때문이었다면 시기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는 취재팀의 질문에 결국 96년 3월 말이었다고 정정했다.)

- 관계를 가진 것은 한차례뿐이었나.

"한번뿐이었다. 린다 김이 미국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다."

- 장소는.

"린다 김이 머물던 서울의 R호텔이었다."

(李씨는 이 대목에서 '린다 김이 자신의 애를 태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도했다' 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린다 김이 다른 고위 인사들과도 상당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투서 사건이 터진 뒤 기무사 조사 결과를 보고 알았다.

많은 인사들이 그녀의 호텔방에 드나들었고 특히 나와 관계를 맺을 즈음에도 모 의원과 깊은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분개했다."

<6일 인터뷰>

- 린다 김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세상 사람을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린다 김은 악인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를 철저히 이용했다. 전생에 나쁜 악연이 있었던 것 같다. "

- 린다 김은 장관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은 로비스트였기 때문에 칼자루를 쥔 고위 인사들이 편지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등 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 내가 먼저 관계를 요구하거나 유도한 게 아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유혹했다. 만약 내가 먼저 관계를 요구했다면 린다 김이 그 후 먼저 나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냈겠는가. 당시로서는 정말 나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줄 알았다."

- 어제 인터뷰에서 첫 관계가 7월이라고 했다가 다시 3월이었다고 정정했다.

두 번 관계를 맺은 게 아닌가.

(李씨는 잠시 망설이다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으며, 첫번째 관계를 맺은 곳은 R호텔, 두번째는 서울의 A호텔이었다고 밝혔다.

- 장관은 린다 김과의 관계와 백두사업은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미국 E시스템사가 납품업체로 선정된 것이 타당했는지는 논외로 하자. 정말 둘 사이의 관계가 백두사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취재팀과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내가 소개받았을 땐 린다 김이 이미 백두사업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끝낸 상태였다.)

다만 대통령 결재 전에 거치게 될 국방부장관 결재를 받지 못하거나 연기될 것을 두려워해 나에게 접근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내가 린다 김을 도와준 점을 인정한다.

사실 린다 김이 나의 도움을 받으려고 수차례 부탁한 것은 백두사업보다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사업이었고 나도 도와주려 했다. "

(李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또 다시 "국민과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는 사죄의 말을 몇차례 반복했다.)

또 "맹세컨대 린다 김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으며, 백두사업 사업자 선정 자체는 지금도 잘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고 강조했다.

정리〓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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