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여성 로비스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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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가 '미국에선 누가 힘이 강한가' 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일이 있었다. 대통령 등 굵직한 자리가 상위를 차지한 가운데 로비스트가 10위에 올랐다.

대단할 것 없는 등위지만 은행이나 정당, 종교세력보다도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만만하게 볼 직업이 아니다.

로비스트의 힘이 강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시하지 못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전력이 화려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나 장관 혹은 상원의원들이 로비스트로 나서는 것이다.

여성의 재색(才色)도 유력한 로비스트의 조건 가운데 하나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의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중국계 안나 찬 셔노트 같은 여성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23세의 풋내기 여기자였던 47년 56세의 클레어 셔노트 장군과 결혼해 화제를 뿌리더니 곧이어 사교계에 진출해 로비스트로 활약했다.

타고난 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갖춘 그녀는 정계.관계.재계 할 것 없이 어떤 일이건 성사시켰다. 그러나 남들이 자기를 치켜세울 때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사교계의 호스티스일 뿐 로비스트가 아니다. "

그 말은 맞을는지도 모른다. 셔노트는 미모를 무기로 호스티스처럼 로비스트의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성들의 생리를 철저하게 이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지위나 지체가 높을수록 미인계가 잘 먹혀들어간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온갖 욕망을 잠재우려 겉으로는 근엄한 척 해도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60년대 초 영국에서 발생했던 크리스틴 킬러 스캔들은 고관들의 그런 생리를 잘 보여준다. 국방장관 프로퓨모가 소련 간첩 워드의 집에 은밀하게 드나들며 킬러와 관계를 맺고 국가기밀까지 누설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보수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인에게도 물론 사생활은 있게 마련이지만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특히 국정을 주무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일거일동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황당한 일에 휘말리기 쉽다.

문민정부 시절의 국방장관과 국회 국방위원장이 무기거래를 둘러싸고 미국 회사의 한국 여성 로비스트와 연루됐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더구나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 여성 로비스트와 '사랑' 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편지까지 주고 받은 사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사적(私的)' 인 문제가 공론화돼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해 왔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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