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한대사 오구라의 '일본은…'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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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국력이 약한 쪽은 강한 쪽에 예를 다하여 일종의 복종관계를 맺음으로써 국가간의 평화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전 주한 일본대사는 외교의 한 단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의전(儀典)이나 예(禮)가 우선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힘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외교사는 어떤 모습일까. 오구라는 근대사에 나타난 우리 외교의 특색으로 명분없는 체면 유지를 꼽는다.

그는 1891년 조선 함경도에서 쌀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이 내려졌을 때를 예로 든다.

일본이 자국 상인들의 불이익에 항의하며 배상금 지불을 요구하자 조선은 "손해배상이란 우리의 치욕" 이라며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계적인 논리없이 체면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는 외교정책은 경직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광복 이후 일본이 근대화나 서구화에 한발 앞선 모습으로 한국에 다가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본에 문과 예를 가르친 나라' '일본의 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 전통적 문화에 대한 모욕' 이란 논리를 앞세우다보니 외교정책에 유연성을 잃었다는 것이 오구라의 주장이다.

최근 출간된 '일본은 세계를 어떻게 요리했는가' (황순택 옮김.중앙M&B.9천원)는 일본과 각 나라의 외교 관계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를 통해 외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고대 한국.중국과의 관계에서부터 서유럽과 교섭을 시작한 중세와 현대 미국과의 관계까지 무려 1천5백년에 걸친 기간을 다룬다.

이 책은 일본과 상대국간의 문화차이를 외교사의 이면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물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외교가 일본인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있다.

외교사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국제문화비교론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오구라는 일본인 특유의 시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오구라 대사는 1997년부터 2년간 주한 일본대사를 지내면서 판소리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현재 주 프랑스 대사로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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