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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상명대 총장의 파격적 교육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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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70~80년대 중·고교들은 전교생의 석차와 명단을 복도 벽에 붙이곤 했다.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빼곡한 명단 속에서 자신의 이름과 석차를 발견하고 얼굴이 붉어진 일을 경험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에서 이런 장면이 등장했다. 상명대 이현청 총장이 학교 홈페이지에 전체 전임교수 293명의 업적평가 결과와 등수를 공개한 것이다. <본지 12월 4일자 1면>

이 총장의 ‘파격 교육 실험’에 대한 대학 안팎의 반응은 다양했다. 상명대 교수들은 꽁꽁 얼어붙었다. 성적이 잘 나왔든, 그렇지 않았든 입을 닫았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따뜻하게 박수를 쳤다. “상명대의 미래가 기대된다. 대단한 결정이다”는 격려가 많았다. 다른 대학 교수들에게도 충격이 되고 있다. 서울 A사립대 기획처장은 “동료 교수를 벌거벗기는 일이 쉽지 않은데 큰 일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총장의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 가지 리더십 때문이다. 우선 교수사회의 ‘온정주의 파괴’ 리더십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기자에게 “신임교수 채용 때만 깐깐하고, 정년보장 교수들은 아무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대학을 망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학생 고객 리더십’도 강조했다. “대학 존재의 이유는 학생이므로 교수들이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상명대 김정겸 총학생회장(법학과 4학년)은 “총학생회가 교수 강의 평가 공개를 요구했는데, (총장님이) 더 큰 것을 주셨다”며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대학평가 리더십’이다. 이 총장은 대학평가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다. 학내 업적평가 기준 등을 세우기 위해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100건이 넘는 조항을 새로 만들거나 고쳤다. 평가가 없으면 경쟁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리더십이 어떤 성과를 낼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교수들의 냉소와 반발로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총장의 말대로 “교수가 바뀌어야 학생 실력이 좋아지고, 대학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교수 성적표 공개라는 충격요법을 쓴 이 총장의 용단이 전국 대학에 울림이 됐으면 좋겠다. 현실에 안주하는 교수와 대학은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홍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