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화폐단위 변경' 입장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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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문제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6일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연구 검토 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검토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날 국회 예결특위에서 열린우리당 박병석 의원이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정부는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같이 답했다.

이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화폐개혁을 논의할 만큼 우리 경제가 한가하지 않다"는 그동안의 입장에서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10만원권과 같은 고액권의 발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고액권을 발행해도 경제 규모로 봤을 때 4~5년 뒤에는 화폐단위 변경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당장 경제적 비용이 들더라도 근본적인 화폐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화폐단위를 변경할 경우) 경제적으로 가장 부정적인 면은 화폐단위를 바꾸는 과정에서 마지막 끝수가 올라갈 수 있어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서민생활에 직결된 물가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느냐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교환 과정에서 예금을 동결하면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길 수 있으며 자판기 등 모든 기기를 바꿔야 하는 등 부담이 늘어날 수 있어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의 몸집에 맞춰 (화폐단위를) 적절한 수준으로 가져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화폐단위 변경 일정에 대해 이 부총리는 "화폐단위 변경의 경우 최단 3년, 최장 5년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논의를 언제 시작할지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화폐단위 변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이 부총리가 구체적 검토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국민적인 토론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현재의 화폐 액면을 1000대 1이나 100대 1로 줄여 1000원을 1원 또는 10원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 고액권 발행이나 화폐가치의 선진화, 위폐방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폐와 동전을 모두 새로 찍어야 하는 데다 물가가 오를 수 있고 현금자동지급기 등 각종 기기들의 액면인식 센서를 모두 교체해야 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김종윤.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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