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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사관의 치열한 붓, 왕의 숨소리까지 그려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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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승정원일기
박홍갑·이근호
최재복 지음, 산처럼
336쪽, 1만8000원

조선조 호방한 성격의 태종이 사냥터에서 낙마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말이 “이 사실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였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에는 태종의 뜻과는 달리 이 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기록되고 말았다. 놀라운 기록의 힘이다. 조선시대 역사기록물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조선왕조 실록’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국보 제303호인 ‘승정원일기’를 내세운다. 비록 인조 이후의 것만 남아있지만 편집된 ‘실록’과 달리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속기록이란 점에서다. 288년 동안의 기록으로 남겨진 책만 3245책에 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승정원은 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기구로, 임금님의 혀와 목구멍같다는 뜻으로 ‘후원(喉院)’ 이라 불렸을 정도란다. 따라서 이 책은 그곳의 업무일지인 셈인데, 왕과 신하들이 현안을 두고 토론을 벌일 때 기록이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를테면 1750년 7월 3일 진시(오전 7~9시) 영조가 홍화문에 나와 도성의 백성을 만난 광경도 꼼꼼하게 그려졌다. 영조는 당시 양인 장정에게 부과하던 노역인 ‘양역(良役)’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의견이 다른 두 무리를 남쪽과 북쪽에 갈라 서라고 지시했다. 정책을 결정하며 일반 백성을 대면한 현군의 모습이 드러난 대목이다. 영조는 시전 상인들을 만나서는 “너희들이 느끼는 병폐와 고통을 말하라”며 귀를 귀울였다고 한다.

영조가 재위 중 백성들과 만난 게 55차례였는데, 영조의 남달랐던 ‘소통의 리더십’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전해줄 수 없다.

영조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난 친필 현판. 1744년 호조에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현판에는 “조세를 고르게 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씀씀이를 절약하여 힘을 축적하라”고 적혀 있다. [산처럼 제공]

인사를 둘러싸고 현종이 관원들과 ‘줄다리기’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현종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준 공으로 의관 양제신을 수령에 임명하라고 했으나, 신하들은 임명안에서 그를 뺐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현종은 임명안 결재를 보류하고 이조참의를 대기시킨 채 시간을 보냈다. 결국 현종이 의견을 관철시켰지만 ‘승정원일기’엔 이 문제로 현종을 준엄하게 비판한 송시열의 서늘한 문장까지 그대로 담겨 있다.

‘승정원일기’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궁궐 이야기뿐만은 아니다. 대리시험이 성행해 골치거리가 됐던 과거시험 현장, 묘를 둘러싼 학봉 김성일 후손과 유성룡 후손들의 공방, 굶주림에 버려진 아이들, 가짜 족보를 만들어 돈을 벌던 이들 등 조선의 사회 풍경이 펼쳐진다. 조선시대의 기록문화가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것은 이 책을 쓴 세 국사학자의 열정이다. ‘승정원일기’에 매료돼 쉽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똘똘 뭉친 저자들의 노력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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