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 거품 막아라 … 미 ‘버블 파이터’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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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ed)에서 ‘버블 파이터(Bubble Fighter)’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버블 파이터’란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기 전에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시장을 차분하게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당연히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의 가격이 올라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더라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거품 차단에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정설이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가격이 올라야 거품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거품 제거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거품이 있는 특정 시장만 잡는 게 아니라 건전한 다른 부문까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 정책을 쓰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라는 얘기다. 자산시장의 거품은 해당 시장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금융 당국의 감독과 규제로 막아야지, 금리 정책을 쓰면 온 세상에 비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애꿎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준은 과거 금리를 인상해 선제적으로 버블을 잡기보다 저금리로 촉발된 거품이 터지기를 기다렸다가 거품이 꺼진 뒤 충격을 최소화하고 경기회복을 도모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거품이 터진 뒤 ‘청소’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온 셈이다.

실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이던 1999년 “연준이 물가 통제에 포커스를 맞춰야지 호황과 불경기의 경기사이클을 관리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후 기술주가 급등할 때도 연준은 크게 간여하지 않았다. 다행히 2001년 불황은 심각하지 않았고, 실업률도 6.3%를 넘지 않았다. 당시 연준은 2000년대 초반의 불황에 잘 대처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주택시장 붕괴로 금융위기가 터지는 과정에서 연준의 과거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게다가 요즘 아시아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분석이 있고, 금값 등 상품가격도 연일 치솟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올려 자산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신현송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와 토비아스 아드리안 뉴욕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가 주도하고 있다.

신 교수는 아드리안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주택가격 거품 붕괴로 초래된 이번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에 리먼브러더스와 베어스턴 등 월가 금융회사들의 단기 차입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던 점을 지적했다. 금리를 올리면 금융회사의 과다한 차입을 막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산가격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금융감독만으로 자산 붕괴 사이클을 통제하려는 것은 밀물을 막기 위해 구멍 난 널빤지로 방책을 세우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위험 선호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금리정책을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고 있지는 않다. 그는 최근 한 강연에서 “우리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We can never say never.)”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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