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떠오른 중국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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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맥뮐렌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칼리지 특별연구원(오른쪽)과 라종일 우석대 총장이 지난달 28일 만나 대담을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데이비드 L 맥뮐렌 <케임브리지대 특별연구원> - 라종일 <우석대 총장>

“중국의 부상이 갖는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여기에서 ‘자유의 여신’과 같은 새로운 도덕적 지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한평생을 중국사, 그중에서도 당사(唐史) 연구에 몰두해 온 데이비드 L 맥뮐렌(70)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칼리지 펠로(특별연구원)가 중국의 부상에 대해 내리는 진단이다. 그는 1968년부터 2006년까지 38년 동안 케임브리지대 동양학부 교수로 재직한 영국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다.

지난달 30일 우석대학교에서 ‘중국과 세계’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해 라종일 우석대 총장과 28일 대담을 했다.

▶라=당은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이 당으로부터 배울 점은 무언가.

▶맥뮐렌=당의 위대함은 강력한 군사력이나 효율적인 행정력에 있었던 게 아니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자세에 있었다. 당에는 전반적으로 공개적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국가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어떤 종교도 받아들여졌다. 또 인명을 극히 중시했다. 최대 7000만 인구가 존재했을 630년 한 해 동안 단지 29건의 사형만을 집행했다. 이는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놀라운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당으로부터 정치적 반대 의견도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개방된 자세, 신분 구분이 없는 관리 충원제도, 그리고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 등에서 많은 시사를 얻어야 할 것이다.

▶라=중국의 부상이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중국의 앞날과 관련해 많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경쟁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세계 평화에 위험이 될 것이란 시각이 있다. 반면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으므로 서로 보완적 관계를 유지해 세계 안전에 기여하리라는 낙관적 예측도 있다.

▶맥뮐렌=중국이 ‘필연적으로’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역사상 강대국이 되려고 하는 과정에서 자기와 주변에 많은 불행을 초래하고 주저앉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라=강대국이 되려면 군사력뿐 아니라 도덕적·이념적인 면에서도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내세우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에 필적할 만한 보편적 가치를 중국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가. 혹시 ‘유교사회주의’가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맥뮐렌=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실리적 관계를 추구하는 한편 현실적인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해군력을 포함해 지상군, 항공우주 분야의 전력 등에서 미국에 필적할 수준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중국의 부상에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어떤 이상이나 비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라=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외의 분야에서도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맥뮐렌=중국이 정치적으로 좀 더 세련돼지기를 바란다. 보다 개방적이고(open) 책임적인(accountable) 체제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정치가 좀 더 민주화돼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고 퇴장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안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요인이 될 것이다.

▶라=현재 미국과 중국을 가리켜 흔히 ‘G2’라고 한다. 외부에서는 이것을 중국의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으로 생각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중국은 이를 중국의 부상을 저해하려는 음모라며 부인하는 형국이다.

▶맥뮐렌=중국 지도부가 그 역할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적인, 그리고 군사적인 관심이 일차적이다. 세계적인 지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책임을 이행해야 하는데 중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또 그런 역할을 수행할 여건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다.

▶라=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를 보자. 중국은 북핵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내정불간섭을 이유로 실제로는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는 데 미온적으로 보인다.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의 가장 큰 정책 목표가 북한의 핵무장 저지가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상태를 유지하려는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맥뮐렌=어려운 문제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나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도 독일의 통일을 반대했었다. 중국이 북한을 유지하려고 하는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는 우려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라=그러나 유럽에서 독일의 존재와 동북아에서 한국의 존재는 다르지 않은가. 통일되고 안정된 한반도는 이웃에 위협이 되기는커녕 이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통일된 독일 또한 지역 안정을 해치는 게 아니란 점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맥뮐렌=그런 생각이 가장 합리적인 현실에 대한 접근이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실천하는 슬기로운 지도자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지속적으로 세상이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라=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와 같은 지역공동체 탄생이 가능할까. 한국과 중국·일본이 과거의 아픔이나 편협한 민족주의적 태도를 털어내고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맥뮐렌=동아시아 3국의 경제협력은 가능하겠지만 어떤 수준에서든 정치적 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다만 당나라 시대에 당과 신라·일본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했던 것처럼 동아시아의 국제적 질서를 존중하면서 상호간에 유익한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견을 수용할 수 있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개방적이고 공개된 자세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리=유상철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맥뮐렌 박사=영국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로 중국 역사서인 『케임브리지 중국사』 내 당대의 유교 부분에 대해 집필할 예정이다. 1957년 홍콩에 영국 공군으로 파견되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케임브리지대 박사로 1988년 출판한 『당대의 국가와 지식인』이 유명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중국 문제를 주제로 토론했으며, 케임브리지대에 한국학 교육 및 연구과정을 개설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쌍둥이 동생은 일본 유학사에 정통한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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