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객은 빠져나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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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낸 자영업자 김모(55)씨는 최근 몇 달간 신한은행의 보통예금 통장에서 돈을 찾은 뒤 다른 은행에서 외화로 바꿔 송금해오다 신한은행 지점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은행 직원은 예금을 줄이고 있는 이유와 은행에 대한 불만 사항이 있는지를 정중하게 물어본 뒤 김씨에게 환율 우대와 송금 수수료 감면을 제의했다. 또 김씨처럼 정기적으로 해외송금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외화재테크적립예금에 가입하기를 권유했다. 다른 은행으로 거래처를 옮길 것을 고려하고 있던 김씨는 오히려 신한은행과의 거래를 늘리게 됐다.

은행들이 우량고객들의 거래 특성을 파악해 이탈을 막는 '자동경보 시스템'을 속속 구축하고 있다. 저금리 및 씨티.한미은행 통합으로 어느 때보다 고객들의 이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이달부터 예금.대출.신용카드.전자금융 등 13개 항목별로 고객의 이탈 조짐을 파악해 곧바로 담당직원에게 밀착대응하도록 하는 '이탈 점수제'를 시작했다. 신한은행도 지난달부터 '고객 거래유형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 은행은 주거래 고객의 신용카드 결제액이 두 달 연속 전무하거나 급여이체 등의 자동이체 건수가 월 4건 이하로 내려갈 경우, 다른 예금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적금형 상품의 만기가 한 달 이내로 다가오면 중점관리 대상에 올린다.

특히 예금이나 적금 만기를 코앞에 두고 하나은행이나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류된다. 예금이나 적금을 찾아 대출을 갚고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3개월간 카드 사용액이 70% 이상 줄어든 고객은 갖고 있는 카드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결제 계좌를 없애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고객이 만일 집 주소나 직장 주소를 주거래 지점의 관할권 밖으로 옮기거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거절당했을 경우, 3개월간 2건 이상 불만을 표시했다면 아예 은행과의 거래를 끊을 가능성이 커진다.

은행들은 이런 경우 즉각 담당직원에게 통보해 안부 전화를 걸거나 생일.환갑 등 기념일을 축하하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록 하고 있다. 또 예금이나 대출 조건이나 금리를 우대하고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제시해 고객을 붙잡으려 애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스템 도입 이후 이탈 조짐이 있는 고객의 70%가량을 붙잡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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