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가요구 정말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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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정상회담의 구체적 합의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일각에서는 물밑접촉이나 '이면합의' 과정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밀사(密使)역을 맡았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11일 기자회견에서 회담 전말을 밝혔지만 그래도 의문점이 남는다. 그의 설명이 본질보다 중국 밀행(密行)에피소드 등 주변 얘기로 짜였기 때문이다.

◇ 합의 대가(代價) 정말 없었나〓북한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당국간 접촉을 비료 등 대북지원과 철저히 연결시켰다.

북한이 '정상회담' 이란 엄청난 카드를 조건없이 수용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朴장관은 "북한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실용주의로 가고 있다" 고 하면서도 북한이 추구하는 '실용' 의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 물밑작업 누가 했나〓지난 8일 朴장관과 송호경부위원장의 합의 사진에는 양측 배석자들의 모습이 슬쩍 드러난다. 베이징(北京) 차이나월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임시로 마련된 회의장은 수석대표 양옆에 2명씩 자리가 배치돼 있다. 대표단은 수석대표까지 3명씩임이 확인된다.

3월 17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의 첫 만남 이전부터 국가정보원 라인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거부감을 표시해온 국정원과 손 잡도록 주선해준 민간 대북 라인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朴장관은 현대.통일그룹 등의 주선설에 대해 "어떤 민간단체의 협력이나 조언을 받지 않았다" 고 부인했다.

◇ 누가, 왜 서둘렀나〓북한측이 서둘러 발표하자고 해 불가피했다는 게 정부의 해명. 그렇지만 총선 사흘 전 메가톤급 합의를 공개한 데 대해선 의혹도 없지 않다.

회담과정에서 북한측이 "정상회담 합의서가 선거에 필요하지 않느냐" 고 우리측에 타진해 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북측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먼저 선수를 치고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총선 후나 정상회담 때 더 큰 선물을 겨냥했을 수 있다는 것.

朴장관은 이에 대해 "우리가 서둘렀다면 북한은 회담과정에서 계속 고자세를 취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 밀사의 격(格) 논란〓남측에서 장관이 나간 회담에 북한은 차관급인 宋부위원장을 보냈다. 정부는 宋부위원장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워 '장관급' 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회담 전문가들은 합의서에 '상부의 뜻을 받들어' 라는 조항이 있더라도 위임장 등을 꼼꼼히 챙겼어야 뒤탈이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민간단체로 간주하던 아태평화위를 당국접촉의 파트너로 인정한 것도 차후 논란의 소지가 있다.

◇ 총비서와 국방위원장〓북한은 김정일의 직함으로 '총비서' 나 '국방위원장' 어느 것이든 편리한 대로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10일 동시발표에서 우리는 '국방위원장' 으로, 북한은 '당 총비서' 로 썼다. 총비서는 노동당의 직함이고 국방위원장은 군최고통치권자를 나타내는 직책. 북한은 특히 직책을 신중히 골라서 사용한다. 따라서 북한이 '최고지도자' 인 김정일의 직책 사용을 우리 재량에 맡겼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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