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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독점 왜 규제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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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독점욕이 강한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개 욕심이 지나쳐 주변에 부담을 주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경제활동에서도 '독점욕이 강한 기업'은 질타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특정 업체가 시장을 혼자 차지하게 놔두면 제멋대로 굴어 소비자들에게 이만저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지요. 우선 공급과 가격을 좌지우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요. 식당도 한 골목 안에 여럿 있어야 맛을 내려는 경쟁을 벌이듯이 경쟁업체가 없으면 품질 개선 노력도 소홀해질 거예요.

그래서 경제학에서 독점(Monopoly)은 중요한 연구 분야의 하나지요.

얼마전 삼익악기와 영창악기 두 회사를 합치는 문제를 둘러싸고 피아노 시장에서 독점 시비가 벌어졌어요. 이렇게 같은 업종의 경쟁업체를 인수.합병(M&A)해 덩치를 불려서 독점 상태가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재기로 창고에 물건을 쌓아놨다가 품귀현상을 기다려 비싼 값에 파는 것도 독점을 악용한 사례지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회사가 너무 잘 나가는 바람에 독점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윈도 같은 특출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종전에 없던 혜택을 주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러나 경쟁할만한 제품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다른 서비스를 끼워판다든지 하는 불공정 행위를 할 유혹에 빠지기 쉬운 거지요. 독점은 생산.공급자에겐 꿀맛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겐 고통을 줍니다.

미국에선 일찍이 19세기 후반부터 금융.철도.철강 분야에서 M&A를 통해 덩치를 불린 독점업체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정부가 독점금지법을 서둘러 만들어 규제한 지 100년이 넘었어요. 우리나라도 공정거래위원회라는 별도 기관을 설립해 부당한 시장독점을 막기 시작한 게 1980년대 초반입니다.

최근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합병하려는 시도를 공정위가 가로막고 나서 독점 문제가 다시금 관심사로 떠올랐어요. 삼익이 반년 전에 사들인 영창악기 지분(48.6%)을 1년 안에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린 거예요. 두 회사가 합치면 국내 시장점유율이 92%나 돼 앞서 열거한 독점 폐해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지요.

공정거래법에선 10억원 규모 이상의 시장에서 50% 이상을 한 업체가 차지하면 독점으로 간주합니다. 피아노 시장의 경우 90%를 넘었으니 독점 판정을 받아 마땅할 것 같은데 삼익 쪽에선 도저히 수긍하지 못하겠다고 그러네요.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는 걸까요.

이를 살피기 위해 우선 독점판정 때의 단서조항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시장점유율 50% 이상'이란 잣대를 기계적으로 들이대면 곤란한 경우가 있을까봐 예외적인 경우 세 가지를 고려하겠다는 거죠. 다음과 같습니다.

①합병할 회사의 재무상태가 나쁘다 ②인수되지 않으면 생산설비를 아예 못쓰게 된다 ③아무도 인수하려 들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면 합병할 구실이 충분하다고 보고 시장점유율이 아무리 높아져도 독점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거죠.

그런데 공정위는 이번에 첫번째 단서조항은 인정하면서 두번째와 세번째를 인정하지 않아 결국 독점 판정에 이르렀지요. 공정위 판단으로는 영창 인수에 관심을 보인 곳이 두 군데가 있었다는 거예요.

삼익 쪽 생각은 달랐지요. "관심을 내비친 정도로 인수 후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거였지요. 또 시장이 활짝 개방돼 값싼 중국산에 속수무책인데 무슨 수로 독점의 이득을 챙기느냐고 반발했지요. 이쯤 되면 독점 여부를 가리는 일은 시장점유율이 얼마라든가, 소비자에게 해롭다든가 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산업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에 대한 판단까지 하는 복잡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아셨겠지요.

그동안 공정위가 독점 폐해를 들어 M&A를 시정하라고 명령한 사례가 26건입니다. 81년부터 15년 동안 단 두건뿐이었는데, 지난해엔 무려 7건에 달했지요.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또 소비자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독점에 대한 규제도 늘어나기 마련이지요.

과거 SK텔레콤-신세기통신,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합병 때는 공정위가 고심 끝에 합병을 허용하기로 했지요. 공정위가 "독점의 정도(시장점유율)가 절대적이지 않고 다른 인수업체가 나타나기 어려운데다 이동전화나 자동차 같은 국가 기간산업을 시급하게 구조조정할 필요가 컸다"는 판단을 내린 거예요. 그러나 요즘에는 삼익악기와 영창악기의 M&A처럼 공정위가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홍승일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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