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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기사들의 ‘바둑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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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자선바둑대회에서 명사들과 조훈현 등 최정상 프로기사들이 대국을 벌이고 있다. 참가자들이 기부한 5000만원은 전액 사회적 기업 지원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오종택 기자]

1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의 한국기원. 검은 바둑돌을 든 김종렬 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의 앞에서 수를 읽던 사람은 ‘국수’이자 ‘바둑 황제’로 불리는 조훈현 9단이었다. 김 대표가 고민하는 사이 옆자리 바둑판에 앉은 인터넷서점 예스24의 김동녕 회장이 살짝 떨리는 손 끝으로 돌을 놓았다. 조 9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 사이 김종렬 대표가 묘수를 찾아냈다. 조 9단의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번졌다. 이날 조 9단은 두 사람과 번갈아 가며 동시에 대국을 했다.

옆 자리에선 원유철 한나라당(평택 갑) 의원이 진땀을 흘렸다. 그는 유창혁 9단과 1대1로 붙었다. 아마 5단인 원 의원이 한 수 배우는 입장이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대국에 앞서 “국회 바둑동호회 부대표로서 제대로 겨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한국기원이 주최한 특별한 대국은 국내에서 처음 열린 ‘자선 바둑대회’였다. 조훈현ㆍ유창혁ㆍ양재호 등 바둑계 스타 40여명이 100여명의 인사와 다면기(多面棋) 등을 벌였다. 다면기란 프로 한 명이 아마추어 여러 명과 동시에 붙어 바둑을 지도하는 방식이다. 이창호 9단도 같은 건물에서 열린 ‘명인전’ 대회의 결승을 마치고 참여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프로기사 장주주ㆍ루이(각 9단) 부부와 개그맨 김학도(아마 초단)ㆍ한해원 프로(3단) 부부, 안형준(2단)ㆍ성준(초단) 프로 형제 등 ‘가족 기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대회를 후원한 최봉수 웅진씽크빅 대표와 노영현 한국물가정보 회장 등 고수와의 1대1 대국에 참가한 인사들은 100만원씩을 기부했다. 1대2 대국자들은 10만원 이상씩을 냈다. 이날 모인 총 기부금은 5000여만원으로 집계됐다. 행사를 주도한 양재호 기사(9단)는 “모은 돈은 '사회적기업 지원네트워크(sesnet)'에 전달해 취약계층에 쓰도록 할 예정”이라며 “프로기사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취약계층 자립에 도움이 된다니 기쁘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저소득층ㆍ장애인 등에게 일자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지적 장애인들이 만드는 유기농 쿠키 ‘위캔쿠키’ 처럼 276개 기업이 정부 인증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진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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