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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빵 한 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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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류는 항상 꿈을 꾸며 살아왔다. 기독교는 지상에 신의 나라 건설을 약속하고, 폭군과 교활한 자가 아닌 선한 사람이 통치하는 세상을 약속한 거룩한 꿈이다. 이성의 힘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사회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 18세기 유럽 계몽주의도 하나의 꿈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 운동은 빈곤과 불의로부터 해방된 영광스러운 세상이라는 꿈을 향해 지상의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현실에서 공산주의는 혁명, 학살, 관료주의, 인종 박해, 독재를 낳았지만 사람들은 꿈과 희망의 이름으로 붉은 깃발을 계속 따랐다. 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킬 정도로 꿈과 희망의 위력은 그렇게 위대했다.

권력을 향한 격렬한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은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높은 이상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흔히들 미치거나 어리석은 짓이라고 단정하는 위대한 일을 한다. 물리학·천문학 창조자인 뉴턴은 위대한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천체와 자연에서 신의 계획을 찾고자 한 신비주의자 연금술사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시아를 정복한 다음 그리스인과 아시아인이 단일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는 보편 제국을 창조하려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가 정복한 영토를 똑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 단일 제국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이러한 비전을 지닌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얻어야만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느끼는 야심가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통치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기를 원한다. 창조하려는 욕구는 소유가 아닌 베풂의 영역에 속하며, 이기주의 아닌 이타주의 영역에 속한다.

대통령의 권력 또한 세상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창조적 건설자, 즉 꿈을 지닌 자는 자신의 권력 앞에 사람들이 무릎 꿇음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두에 이익 됨을 함께 이루기 위해 따름을 요구한다. 그들은 명령을 ‘호소’로, 복종을 ‘동의’로 이해한다. 모든 창조자는 천성적 지도자다. 창조자는 다른 사람이 변화하기를 바라며, 그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해 아직까지 아무도 꿈꿀 수 없었던 가능성을 그들이 접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세상 건설을 바라기 때문이다.

밀가루 원조라도 받아야 목숨을 연명하고 살아가던 나라가 이제 원조를 해 주는 나라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립한 140여 국가 중 오직 한국뿐이라 한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 치자(治者)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만고의 진리다. 우리 시대에 꿈이 있는 창조적 지도자,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한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