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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사람'이 부채질한 '산불대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례적으로 잦은 산불로 전국에서 수많은 피해가 나고 있다.

산림청 공무원들이 휴일.밤낮도 잊은 채 비상근무를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50여일 동안 중부이북 지방에서 건조주의보가 계속된 데다 4.13선거.구제역 사태로 인한 들뜬 사회 분위기 탓인지 산불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계속된 산불은 '천재' (天災)라기보다 '인재' (人災)쪽에 더 가깝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우선 '산불 예방의 최전선' 이라 할 수 있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마인드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지자체들의 산불예방 노력이 우선 미흡하다.

서울.광주.대전 등 3개 시.도는 지난해 입산통제구역 무단 입산자 등 산림법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실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1998년 이후 계속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임업직은 감축의 주요 대상이 됐다.

산림청의 경우 산림보호 및 산불방지 전담 자리인 산불통제관(국장급)이 없어지고 대신 해당 업무가 임업정책국 산하 산불방지과로 흡수됐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대부분 시.군의 산림과가 '계' 단위로 격하됐다.

지난해말 현재 전국의 산림업무 담당 공무원은 1백35과 5백59계에 2천7백80명으로 97년말에 비해 87과 41계 8백58명(24%) 줄었다.

검.경을 포함한 공무원과 국민들이 '법치주의' 에 둔감한 것도 산불이 줄어들지 않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불사범에 대한 처벌규정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산림법(120조)상 실수로 불을 냈을 경우에도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에 처할 수 있도록 돼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에서 총 3백15건의 산불이 났다. 하지만 산불사범 처벌은 ▶불구속 입건 80건▶내사종결 32건 등에 그쳤다.

그나마 전체 발생건수의 절반이 넘는 1백87건은 피의자를 아예 잡지도 못했다.

"주민들이 가해자를 알면서도 감싸주기 위해 신고를 기피한다" 는 일선 공무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국민들도 사소한 불티 하나가 큰 재산피해와 생태계 훼손을 가져오는 산불을 부른다는데 무감각한 것같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칠 때가 아닌가 싶다.

최준호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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