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도마오른 日총리 밀실 추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 자리의 모리 요시로(森喜朗)로 합시다. "

5일 출범한 모리 정권의 산실은 호텔방이었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경위는 이렇다. 지난 2일 오후 10시 도쿄(東京)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자민당 실력자 5명이 한 객실에서 극비리에 얼굴을 맞댔다.

모리 간사장.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관방장관.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 대리.무라카미 마사구니(村上正邦)의원.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정조회장이 그들이다(당시 직책). 논의의 초점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총리의 회복 여부 한 가지였다.

"뇌경색으로 혼수상태다." 아오키 장관의 보고 후 일순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후계문제로 얘기가 옮겨지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무라카미의 한 마디였다. 그의 모리 추대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 총리' 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오부치가 입원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후 정부 대변인인 아오키는 연막을 쳤다. "의식은 멀쩡하고 입원했을 뿐이다. "

6일 모리의 집권 전모가 드러나면서 자민당의 밀실 담합정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옛 소련의 크렘린과 다를 게 뭐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 는 자괴(自愧)의 목소리도 나왔다.

케케묵은 파벌간 절충만이 아니다. 뒤이은 자민당 양원 총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경선은 고사하고 모리의 정책표명 연설도 없었다. 과정은 온데 간데 없이 재집권이란 권력의 논리만 꿈틀거린 것이다.

'국정공백 우려' 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누가 일본이 직면한 안팎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조차 없다" 고 꼬집었다.

비판은 자민당 안에서도 일었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의원은 "유감스럽게도 파벌 대(大)전성기다. 자민당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고 독설을 퍼부었다. 1980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총리가 쓰러진 뒤 파벌간 균형논리로 스즈키 젠코(鈴木善幸)총리가 탄생했을 때와 같다는 것이다.

개운치 않은 모리 집권과정은 정통성 시비로 불똥이 튀고 있다. 흠집없는 과정이야말로 정통성의 원천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오영환 도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