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디언들도 낙선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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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 대륙의 북서부 끝단에 있는 워싱턴주에서 2000년 미국 선거판 중에서 가장 치열한 낙선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낙선전의 화살촉에 독을 바르고 있는 쪽은 보호구역내에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 반면 그들의 화살비를 뚫고 4선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공화당 출신 슬레이드 고튼(72)상원의원이다.

인디언들이 고튼 의원을 낙마시키려는 것은 그가 자신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견제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조상들이 백인 이주민에게 탄압받은 역사의 대가로 여러 이권을 독점적으로 누려 왔다. 워싱턴주의 경우 27개의 인디언 자치그룹이 카지노.어업.주류판매같은 수익성 높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인디언들이 법으로 규정된 독점적 지위를 뛰어넘어 비(非)인디언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워싱턴주에선 인디언들이 독점사업인 조개류 채취를 위해 한밤중 다른 주민들 소유인 해변지대에 들어와 마구 헤집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고튼 의원은 서부개척 시대의 기병대장처럼 인디언들과 맞섰다.

그는 "인디언들도 불법행동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 고 선언했다. 그가 상원에 진출한 뒤 맨처음 추진한 일이 일부 송어류에 대한 인디언의 독점 어업협정을 폐기하는 법안 제출이었다.

인디언들은 그런 고튼을 '공적 1호' 로 규정하고 '인디언에 대한 마지막 전사(戰士)' 라는 은유적 험구를 붙여놓았다.

인디언들은 고튼 낙선작전을 위해 1백50만달러를 모금해 TV.라디오.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고튼이 얼마나 그들의 이익과 권리를 해치고 있는지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고튼과 인디언의 한판 승부는 미국 낙선운동의 본질적 구조와 명분을 보여준다. 공격하는 그룹은 자신들의 구체적 이익 침해를 적시하고 그 이익의 방어를 위해 낙선운동 자금을 모은다.

반면 공격을 받는 쪽도 피습(被襲)의 이유를 외면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유권자를 상대로 당당하게 논리로 승부한다.

"고튼은 반(反)인디언주의자" 라며 인종차별과 연결시키거나 "인디언들은 민주당의 홍위병" 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여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는 이익과 법익(法益)의 충돌 속에서 당사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을 지켜보며 투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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