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불법 감시' 70억 헛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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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5일 오후 경남지역의 한 총선후보 합동연설회장. 후보들의 열띤 유세가 벌어지고 있는 연단 뒤편의 나무그늘에서 완장을 두른 30~40대 주부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16대 총선을 맞아 의욕적으로 조직한 선거부정감시단원들이 유세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 주부는 그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시간만 보낼 뿐 감시활동은 하지 않았다.

일부 단원들은 '후보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유세장을 빠져나갔다. 완장을 찬 것만 빼면 일당을 받고 동원된 청중과 다를 바 없었다.

감시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 여성단원은 "우리가 이렇게 많이 나와있는데 누가 일당을 나눠주고 하겠느냐" 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청중들 사이를 '한바퀴 '돌아보니 사정은 달랐다.

"○○엄마는 3만원 받고 나왔다더라" 는 등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유세가 끝난 뒤 동원된 듯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감시단원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6일 오후 인근지역 한 장터에서 벌어진 거리유세 현장에서의 감시도 형식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감시단원 3~4명이 함께 움직여 단속의 실효성은 없는 듯했다.

선거운동원들의 신분증 패용 여부만 챙길 뿐이었다. 한 후보측 운동원은 "감시단원이 지구당에 찾아온 적도 없다" 며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선거구마다 50여명, 전국적으로 1만1천여명에 이르는 선거부정감시단. 일당과 교통비 명목으로 4만원 가량을 선관위에서 지급받는다. 선거기간 16일 동안 국고에서 지급되는 수당이 70억원을 넘어선다.

선관위가 감시단원들의 활동에 기대를 했다면 애초에 철저한 교육이 선행돼야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 등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단속요령 등은 전달됐다" 며 "자발적인 참여자가 아니어서인지 사소한 사항들만 약간씩 보고되고 있다" 고 말했다.

16대 총선 유세현장에는 '동원된 유권자' 와 '동원된 감시단' 만 있을 뿐 진짜 유권자와 실제 단속인원은 없는 것 같았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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