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왜 만화를 그리게 됐어?" ③

중앙일보

입력

“앞으로는 동양의 가치가 평가받는 시대 올 것”

畵手 조영남 토크쇼 “무작정 만나러 갑니다” 23·끝 - 만화가 이원복 교수

조영남월간중앙 나와 참 생각이 비슷하다. 정치판에는 예의도 없고 배려도 없어. 정치인들이 총리를 다그치면서 희희낙락한다는 것이 선진국 수준이냐고? 어떻게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는지 모르겠어.

이원복 제가 볼 때는 기업들 덕분이에요. 제가 1989년에 처음 소련에 가서 놀랐던 게 있어요. 당시 안보문제 이런 것 때문에 못 가던 시절이었는데 “공산주의 국가 현실을 안 보고 어떻게 비판하느냐”고 주장해서 가게 됐죠.

한국 국민은 그 나라 발도 못 들이던 시절인데 모스크바 공항 카트마다 ‘삼성’ 이름이 다 박혀 있더라고요. 기업은 국민이든 정부든 훨씬 앞서 나가게 되어 있어요. 생존해야 하니까. 요즘에는 세계 어디를 가든 현대·삼성·LG 브랜드를 볼 수 있죠. 그런 것을 보면 기업들이 참 고마워요.

조영남 그거 한마디 이야기해줘. 우리나라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이원복 우리가 특정 나라를 롤 모델로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아요. 이미 강력한 국가가 됐지만 선진국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예의 없는 국민이라는 점. 이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거든요. 술에 취해 경찰에 덤비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조영남 미국에서는 경찰이 눈 내리깔라고 하면 그대로 해야 해. 덤비지 못해.

이원복 공권력에 권위가 있는 거죠. 우리가 반드시 갖춰야 할 부분이에요. 앞으로 10년, 20년 이내에 나타날 가장 중요한 화두가 ‘동양의 재발견’이에요. 동양적 가치가 각광받는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서양이 동양을 추월한 것은 1776년이라고 봅니다. 그 전에는 세계경제의 3분의 1을 중국이 차지했고, 모든 부가 동양과 중동권에서 나왔어요.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오고 미국의 독립선언이 나와요. 서구식 자본주의가 본 궤도에 오르고 시민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잡았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200년 남짓밖에 안 돼요. 실제로 150년 동안 대영제국이 등장하며 세계를 완전히 재편해 버리잖아요. 요즘에는 미국 발 경제위기로 인해 서구식 가치가 다시 무너지고 있어요. 그것을 대체할 가치가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동양적 가치라는 거죠.

조영남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역사학적 시각에서 보아도 개인에게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이원복 글쎄…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 아닌가? 저는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어떤 일이 생겨도 ‘그럴 수 있지 뭐. 재수 없네’ 이런 식.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하는데,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편해요.

조영남 오늘 이야기하면서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 정말 재미있는 나라야.

이원복 세계에 유례가 없는 나라예요.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 20가지’ 이걸 주제로 강의한 적도 있어요. 서양 사람들이 처음 한국에 오면 입국하는 순간부터 놀라워 입을 딱 벌리고 나온다는 거야. 유명하지도 않은 나라 공항에 프로펠러기 한두 대쯤 있는 줄 알았는데 세계 최고의 공항인 거지.

서울에 진입해서는 한강 보고 또 놀라지. 도심을 흐르는 강 중 가장 넓은 강 중 하나가 한강이거든요. 또 그 강변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를 보면 기절한다고. 게다가 그 차의 95%가 국산 차, 게다가 더러운 차가 하나도 없이 다 깨끗하니까.

조영남 내가 운전면허를 잃어버려서 경찰서에 갔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경찰서에 갔는데, 글쎄 “조영남 님, 맞으시죠?” 확인하고 따닥따닥 치더니 5분 만에 모든 게 다 처리돼.

이원복 독일 대학에서 증명서 하나 떼려면 며칠이 걸려요. 담당자가 없다느니 휴가 갔다느니…. 그런데 독일 애들이 한국에서 증명서 떼려고 보면 아예 자판기처럼 자동화 설비가 되어 있어. 대단해요.

조영남 마지막 회를 진행하는 마당에 마침 정말 코드가 잘 맞는 친구를 만났어. 나와 생각이 너무 잘 맞아. 나도 밑바닥부터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다 살아봤잖아?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예쁜 여자들 두고 떠나가는 것은 좀 서운하지만.

기획·정리 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presscom@hanmail.net]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