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타는 일본 정국] 1.신속한 새내각 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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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내각이 4일 막을 내렸다. 1년8개월만이다. 집권 자민당은 금명간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 체제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새 내각은 과도적인 성격이 짙다. 공명당 및 자유당 이탈파와 연정을 꾸리는 데다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부치 이후의 일본 정치를 점검해본다.

일사천리였다. 미리 준비된 각본이라도 있었던 듯했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쓰러진 지 이틀만인 4일 후계체제의 골격이 잡혔다.

자민당 총재(총리)에 모리 요시로 간사장, 간사장에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 대리, 각료는 원칙적으로 유임…. 여기에 공명당을 축으로 한 연립정권도 유지된다. 당내 최대 파벌이면서 총리감이 없는 오부치파로선 간사장에 노나카를 앉혀 체면치레를 했다. 결국 총리의 얼굴만 바뀌는 셈이다.

'오부치 쇼크' 는 잠시였다. 자민당은 곧바로 '포스트 오부치' 로 치달았다. 파벌간 물밑 줄다리기를 거듭하다 모리를 선택했다.

내각 총사퇴후 열리는 자민당 양원 합동총회는 모양새 갖추기일 뿐이다. 경선 아닌 추대를 통해 거당 체제를 갖춘 것이다. 1998년 7월 하시모토(橋本)내각이 물러났을 때의 어지럽던 상황과는 딴판이다.

총리가 쓰러진 마당에 국민들한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면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던 것 같다.

오부치-모리의 연정 노굼?비판해온 가토(加藤).야마사키(山崎)파도 "긴급사태로 거당체제 유지를 최우선해야 한다" 고 했다.

불만은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모리 추대에 뜸을 들인 파벌은 에토(江藤).가메이(龜井)파였다. 모리파의 전신인 미쓰즈카(三塚)파에서 갈라져 나와 대립해왔기 때문이다. 이 파벌도 3일 밤 모리 지지로 돌아섰다.

모리는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과 자유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3일 결성한 보수당으로서도 최적의 카드였다. 모리는 오부치 정권을 창출한 연정의 산파역이다. 공명당도 모리를 지원했다.

반 공명당파인 가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공명당 대표는 "모리 간사장이라면 기분좋게 협력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자민당이 정치 공백을 피하려고 애쓴 흔적도 역력하다. 일본이 주최하는 오는 22일의 태평양.섬 정상회담을 위해서도 조기 인선은 불가피했다. 조기 수습에는 파벌들의 냉철한 계산도 깔려 있다.

모리 체제는 과도내각에 불과할 뿐이다. 오는 10월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만큼 그 전에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모리는 총선을 이겨야 본격적인 집권이 가능하다.

자민당내에서 오는 7월의 오키나와(沖繩) 주요국(G8)정상회의 전에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란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민당은 '오부치 쇼크' 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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