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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빼앗아 간 TBC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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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문단속을 잘해 도둑을 조심하고 수도꼭지가 꼭 잠겨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 뒤 프로그램을 시청해 주십시오.”

1970년대 일일연속극 ‘아씨’ 시작 전에 나갔던 안내방송이다. TV가 흔치 않던 시절, 동네 사람들이 이집 저집 몰려가서 ‘아씨’를 보던 데서 비롯됐다. 1970년 3월 2일 첫 전파를 탄 ‘아씨’는 71년 1월 9일 종영까지 폭발적인 시청률(업계 추산 70%대)을 기록했다. 253회로 당시로선 최장 드라마 기록을 세운 데다 출연자(연인원)만도 1200여 명에 달했다. 70년 37만여 대에 그쳤던 TV 보급 대수가 1년 만에 61만여 대로 늘어난 데 ‘아씨’의 히트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64년 첫 민간 TV방송으로 개국한 TBC는 20세기 후반 한국방송의 ‘원형’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듣는 라디오에서 보는 TV 시대에 맞게 드라마·쇼·교양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아씨’가 일일연속극을 정착시켰듯, 개국 프로그램 ‘쇼쇼쇼’는 동적이고 다채로운 편집으로 시각적 충격을 줬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인간만세’는 스튜디오 제작 위주의 사회·교양물이 현장 로케 필름으로 돌아서게 했다.

최초의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살짜기 웃어예’는 기존 코미디와 다른 유머 코드를 창안했다. 노년층이 주인공인 가족 오락 프로그램 ‘장수만세’, 최초의 논평성 대담 프로 ‘동서남북’ 등은 “민간 방송임에도 공익의 본분을 다한 방송이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인기 프로가 많았던 만큼 숱한 스타를 낳았다. 초창기 연극·영화 배우와 라디오 성우들을 대거 안방으로 끌어들인 TBC는 공채 선발(65년 1기)을 통해 차기 스타들을 키워냈다.

버라이어티쇼의 효시인 ‘쇼쇼쇼’는 가요계 스타의 산실이었다. MC ‘후라이보이’ 곽규석을 필두로 조영남·펄시스터즈·김추자·정훈희·남진·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장미화·정미조 등이 ‘쇼쇼쇼’로 스타덤에 올랐다. 무명의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TV에서 처음 부른 것도 TBC였다. TBC가 키운 스타 이은하는 80년 11월 30일 고별방송에서 ‘대본 내용 그대로, 비장하지 않게, 우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신군부 측의 주문을 어기고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며 흐느끼면서 노래해 수개월간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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