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닛폰 리포트] 현대차, 일본시장 재도전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보다 독일 BMW와 벤츠를 더 쳐준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의 인기도 높다. 서양에 대한 동경심이 많은 일본인들에게 유럽 차는 처음부터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반면 아시아 제품은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크다. 일본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자동차·전자제품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이런 시장에 현대차가 들어왔으니 처음부터 어려운 게임이었다. 그럴수록 현대차는 치밀한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차량이 우리와 반대로 좌측 통행인 점을 감안해 핸들을 오른쪽에 달고, 중형차를 내세운 것이 첫째 잘못이다. 일본에서 상당수 수입 외제차는 핸들 위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수입 허가를 받았다. 일본에선 왼쪽 핸들이 근사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소형차를 즐겨 타는 일본 시장에 그랜저·쏘나타를 내세운 것도 패인이었다. 모양새가 차별화되지 않고 실속도 없었던 것이다. 자동차 시장 경쟁이 치열한 일본에선 중형차가 200만 엔(약 2600만원) 정도여서 현대차는 엔고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조차 없었다.

변두리에 전시장을 운영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쿄에 살면서 현대차의 전시장을 가보려고 했지만 찾기가 어려워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 과감하게 긴자 같은 번화가 한복판에 전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현대차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애프터 서비스에 대한 우려도 해소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01년 이후 일본에서의 누적 판매 대수는 1만5000대에 그쳤다. 재일동포와 귀화인을 포함해 ‘범 한국인’이 100만 명에 이르는데도 판매량이 이에 그친 것이다.

현대차는 일본에서 승용차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 소식이 화제에도 오르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현대차의 일본 철수는 브랜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탓이지만 일본 자동차 시장의 침체를 반영한 측면도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가 2007년 일본 소비자 시장에서 두 손을 들고 나갔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일본 시장에 적합한 모델을 개발해 연간 1만 대 판매 목표를 갖고 일본 시장 재도전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위해선 이미 판매된 자동차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는 물론 가능성을 보이는 버스 판매로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승부가 이제부터라고 보고 있다. 북미 중심의 대형차 전략에서 중국·인도·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중소형차 공략으로 방향을 틀면서 해외시장에서 현대차와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일본에서 치른 비싼 수업료는 이들 시장을 공략할 때 더욱 철저한 시장 분석과 마케팅, 기술 승부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돼야 할 것이다. 일보 전진을 위한 잠정 중단이 돼야지 여기서 물러나면 세계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