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 두루넷의 '나스닥 신화'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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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기업들 나스닥서 잇따라 쓴맛' .

이번주 초 국내 신문들의 경제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이다.

이 기사는 24일 상장 예정이었던 '하나로 통신' 이 준비 소홀로 상장을 연기했으며, 'e머신즈' 는 상장에는 성공했으나 공모가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첫 거래를 마쳐 투자자들이 실망했다는 내용이다.

'두루넷' 이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직상장한 후 나스닥 진출을 '성공의 보증수표' 로 여기며 이곳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이다.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만약 이들 기업 관계자들이 나스닥 상장에 관한 현장 리포트 '우리는 이렇게 나스닥을 사로잡았다' (김도진 등 지음.김영사.8천9백원)를 먼저 읽었다면 혹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이 책은 국내외에서 지명도가 전혀 없다시피 한 두루넷이 1999년 11월 17일 한국 기업 최초로 나스닥 직상장에 이르기까지를 생생하게 담은 현장 보고서다.

액면가 2.1달러(2천5백원)짜리 주식이 18달러에 상장돼 거래 첫날 44달러까지 오르며 2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인 '두루넷 신화' 의 주역 두루넷 김도진 부사장이 쓴 책으로, 상장하기 전 21일 동안 7개국 14개 도시에서 94차례나 가졌던 로드쇼(투자설명회)현장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대충 먹고, 대충 자고, 대충 참아가며' 지낸 21일의 피말리는 경험을 통해 나스닥 상장의 의미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해준다.

한마디로 나스닥을 목표로 뛰는 기업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이드북이다.

흔히 미국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상장 유효판정을 받으면 나스닥 상장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로 통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로드쇼 과정에서 뜻밖의 문제에 부딪혀 상장이 좌절되는 수가 있다.

또 특별한 하자가 없어도 투자자를 모으지 못하면 액면가 아래로 주가가 형성돼 상장의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로드쇼에서의 일처리가 나스낙 상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셈이다.

저자는 나스닥 고지 점령을 위해 뛰어난 영어실력과 회사 내부 실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네 사람으로 로드쇼 팀을 짰다.

하루에 여덟번 설명회를 해야하는 등 빡빡한 일정도 부담이지만 경영 전반에 관한 투자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로드쇼를 하는 데 가장 당혹스런 부분이다.

투자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드쇼 일주일전부터 출발지 홍콩에서 '전지훈련' 에 들어갔다.

나스닥 상장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총괄해 주는 두루넷의 주간사 리만 브라더스의 도움을 받아 3백~4백개의 예상질문을 뽑아 실전훈련에 들어간 것이다.

모든 수치를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히 암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손동작과 시선처리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사전 모니터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가장 가슴떨렸던 기억은 뉴욕의 투자설명회. 주말에 도착해 모처럼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호텔에 뉴스레터 한장이 날아들었다.

한 투자회사가 상장사들을 분석한 자료로 '두루넷 주식은 되도록 사지 말고 오히려 두루넷의 경쟁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게 좋다' 는 내용이었던 것. 그러나 굴하지 않고 두루넷의 비전을 더욱 충실히 설명해 1백%투자를 끌어냈다.

저자는 나스닥 상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비밀유지를 강조한다.

미국은 상장 예정 광고로 주식값을 부풀리는 것을 엄격히 막는다.

광고비율이나 새로운 프로젝트 등 평소보다 활동을 많이 해서도 안된다. 결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라면 침묵의 미덕을 먼저 배워야하는 셈이다.

두루넷 역시 마지막날 로드쇼까지 기자회견을 삼갔다.

경제관련서가 짧은 기간에 돈을 불리는 재테크에 치우쳐 있는 요즘, 땀과 노력으로 값진 결실을 이루어낸 이들의 현장보고서는 나스닥을 향해 뛰는 후발주자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안혜리 기자

두루넷은…

어떤 이는 두루넷의 나스닥 상장이 1천억원에 가까운 광고효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수치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국내 기업 중 나스닥 상장 1호라는 사실이 두루넷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은 것이 사실이다.

삼보컴퓨터 이용태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두루넷은 1996년 7월 한국전력의 여분 통신회선을 임대해주는 회선임대사업을 하던 업체로 출발했다.

97년 9월 한국전력.마이크로소프트(MS)와 3자간 계약을 채결하면서 주력사업을 초고속 인터넷 사업으로 바꿨다.

99년 4월 MS사로부터 5천만 달러의 외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나스닥 직상장에도 MS사가 두루넷의 2대 주주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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