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재벌 미망인·두 아들, 16억달러 유산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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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스물 여섯 살짜리 토플리스 댄서와 결혼한 89세의 텍사스 거부.그녀를 테러리스트처럼 경계하는 68세 둘째 아들.거부의 사망과 유언장.16억달러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한 차남과 한푼도 받지 못한 미망인 및 장남의 대규모 소송반격….

영화 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2세는 86세였던 1991년 마음 둘 곳을 찾고 있었다.

20년 동안 같이 살았던 부인과 22년간 관계를 맺어오던 스트립 댄서 출신 정부(情婦)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던 그는 토플리스 바에서 23세의 댄서 애너 니콜 스미스를 만났다.

그녀는 10대 때 통닭구이 가게의 동료 종업원과 결혼한 적이 있고 아들이 있었다.

마셜을 만나자마자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다. 그녀는 92년 '플레이보이' 잡지의 '올해의 모델' 로 뽑혔고 '게스' 청바지 광고모델로 발탁돼 유명해지기도 했다.

마셜은 94년 6월 그녀와 결혼했고 1년2개월 뒤 사망했다.

사건의 제2막은 결혼 전인 92년에 작성된 유언장에서 시작된다. 유언장은 16억달러 유산의 대부분을 둘째에게 상속하고 첫째와 그녀에게는 한푼도 남기지 않은 것. 형제는 모두 양아들이다.

그녀와 장남은 "둘째가 노쇠한 아버지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우리들을 빼놓았다" 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둘째는 "80년에 형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른 사업체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을 때 그는 이미 상속에서 제외됐다" 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형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사업체에서 손을 떼자 아버지가 유산 배분을 동등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고 반박하고 있다. 형제는 30년이 넘게 말조차 걸지 않고 있다.

둘째는 그녀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노쇠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사랑이 아니라 돈을 보고 결혼한 기회주의자" 라고 비난한다. 그리곤 "그녀가 이미 결혼 때 보석 등 1천만달러어치의 선물을 받았다" 고 덧붙인다.

그녀는 물론 펄쩍 뛴다. 그녀는 "우리가 사귀면서 마셜은 생기를 되찾았다.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걷기까지 했다" 고 회상한다.

5년 동안 소송에 관련된 변호사 비용만 수천만달러. 그동안 세차례 정식 재판기일이 잡혔으나 연기됐고 다음 재판은 9월에 열린다. 배심원단은 이 소설의 끝을 어떻게 쓸 것인가.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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