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들이여, 긍정의 힘을 믿고 강한 엄마들 되시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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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12면

“김 기자님, 오늘 국회 예결위에서 예산이 한 푼도 안 깎이고 통과됐어요. 감사드려요.”
지난 24일 오후, 수화기 너머 보건복지가족부 박숙자 가족정책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이날 열린 국회 상임위의 예결위에서 275억2100만원의 미혼모 지원 관련 예산안이 고스란히 통과됐다는 소식이었다. 24세 이하의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에게 학업과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돕는 내용이다.

열흘 전쯤 미혼모에 관한 정부의 정책을 취재하기 위해 복지부 청사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박 정책관은 “(예산안의) 절반이라도 국회에서 받아주면 좋겠다”며 걱정했다. 기자가 몇몇 예결위 소속 의원들을 접촉했을 때도 “전액 통과되긴 어려울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22일자 포커스로 다룬 미혼모 기획(‘10~30대 미혼모 7인의 아이를 위한 기도’)에 ‘275억 복지부 예산, 국회 얼마나 받아줄까’라는 제목의 박스 기사를 덧붙였다.

그런데 이날 예결위 위원 모두의 전폭적인 지지로 의외로 쉽게 예산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박 정책관은 “(중앙SUNDAY가) 적절한 때 좋은 기사를 내줘서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아직 국회 전체 예결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오늘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에 대한 지원을 언급하셨다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의 1단계쯤으로 볼 수 있을까. 25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자녀 양육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고 ▶셋째 이상을 둔 다자녀 가구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저출산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임신한 청소년에게 자퇴를 강요하는 등의 ‘싱글맘’ 관련 차별을 철폐하고 ▶한부모들에게 직업교육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는 등 미혼모 관련 지원책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나 정치권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다.
우선 복지부 지원책은 25세 이상의 미혼모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미래기획위 전략안 역시 수많은 미혼모가 취업을 하거나 대출을 할 때 받고 있는 여러 형태의 차별 행위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사실 22일자 기사를 본 주변 독자들 중엔 “어려도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저축도 하는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지만 10여 년의 직장 경력이나 석사급 학력을 가진 30대 여성도 미혼모가 되는 순간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 ‘미혼모’라는 말에 차별적 요소가 있으니 정부에서는 앞으로 ‘싱글맘’으로 부르겠다는 미래기획위의 선언 정도로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얼마나 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높은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있을 미혼모들, 그러나 아이 손을 꼭 잡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그들에게 27일 미혼모들을 위한 한 작은 음악회에서 만난 방송인 김미화씨의 말이 작은 힘이 될지 모르겠다. 미혼모 시설인 구세군 두리홈에서 세종문화회관 측이 개최한 ‘나눔예술’ 행사였다.

임신 중이거나 아기를 갓 낳고 그 시설에서 생활 중인 미혼모와 인근 주민 자원봉사자 40여 명에게 김씨는 “여러분이 아기 아빠와 만나고, 아기를 낳고, 여기에 온 것 모두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우주의 기운에 의한 것”이라며 “엄마가 ‘긍정의 힘’을 믿으며 단단히 각오하고 나아간다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한 엄마들 되시라”며 낭독한 시 한 구절.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초록의 겨울보리/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김남조 시인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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