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번엔 “미군 주둔비 지원 깎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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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간 불협화음이 이번엔 주일 미군의 주둔비 지원금 삭감과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정부 출범 이후 주일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표면화된 양국 간 갈등은 핵 밀약 진상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미·일 동맹의 균열이 우려되는 수준으로 확산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들 문제는 모두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 연립정권의 핵심 권력기관인 행정쇄신회의 산하 실무팀은 주일미군의 인건비 부담 문제를 재검토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7일 보도했다.

현재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일본인 근로자 2만5000명 가운데 2만3000명의 인건비는 일본이 부담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내년도 급여 예산 요구액은 1233억 엔(약 1조7000억원)이다. 이 예산은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전력 강화를 위해 1978년부터 지원돼 왔다. 애초 규정에는 없었지만 일본이 미국을 배려해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배려 예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배려 예산은 누적 지급 금액으로 5조8000억 엔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내년도 미군 기지 일본인 근로자의 인건비 지원 예산을 크게 손질할 방침이다. 불황 극복을 위해 예산의 낭비적 요인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예산 타당성을 검토 중인 실무팀은 “미군 기지 종사자들의 급여가 과거 자민당 정권에서 국가공무원 수준과 동일하게 책정돼 지나쳤다”며 삭감 방침을 굳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미군 기지 종사자가 가장 많은 오키나와(沖繩)현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미국은 일본이 핵우산을 제공받음으로써 방위비가 줄어드는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미군 주둔비를 일본 측이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이다. 일본 전체 방위비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에 그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또 미군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오키나와 지역의 주민 안전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미·일 SOFA를 3년에 한 번씩 재검토하자고 미국에 제안하기로 했다. 현행 미·일 SOFA는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면 원칙적으로 중대 범죄에 한해서만 일본 경찰에 기소 전 신병인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키나와현은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초 일본종합연구소의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 회장을 미국에 보내 이런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할 방침이다.

아울러 특혜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군의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 혜택 조치도 폐지하기로 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27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이런 방침을 밝혔다. 그는 “사적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데 대해 통행료를 면제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미국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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