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저자와의 만남 ] 소설 『잘가요, 언덕』 낸 차인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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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을 쓴 차인표씨는 “책을 내고 나서 더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연예인이라서 상대적으로 책을 쉽게 낼 수 있었죠. 하지만 독자에게 다가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소설을 썼다고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웃음)

올 3월에 소설 『잘가요, 언덕』(살림)을 낸 배우 차인표(42)씨의 말이다. 25일 오후 7시30분 서울동숭동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중앙일보·서울문화재단 주최). ‘작가’로 이날 독자들을 만난 차씨는 “10년 전 신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징용됐다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훈할머니 기사를 읽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어머니·장모님·부인 신애라씨 등 가족들이 응원해줘 책을 다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잘가요, 언덕』은 1930년대 백두산 자락 호랑이 마을을 배경으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용이와 순이의 사랑, 일본군 가즈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슴 아픈 사연을 그린다. 왜 이런 이야기를 택했을까.

차씨는 “아직 다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를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구상은 10년 전에 했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모께서 초고를 읽고 “소설로 잘 써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쓰다 중단하기를 반복하면서 언젠가는 쓰겠지, 하면서 미뤄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안 쓴 것은 결국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뜻 보면 차이는 ‘했다’‘안 했다’정도인 것 같지만 0과 1의 차이는 무한대와 같은 거죠.”

그는 언제부턴가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간극을 의미심장하게 보기 시작한 듯하다.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도 “사랑은 생각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입양하고, 음악그룹 컴패션밴드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과 후원자를 맺어온 그의 평소 생각이 엿보였다.

차씨는 글쓰기를 하면서 덤으로 배운 것도 전했다. 『잘가요,언덕』의 초고 제목은 ‘호랑이 마을의 전설’이었는데, 글을 읽으며 웃고 눈물을 흘리는 등 고무적 반응을 보여준 아들이 어느새 자기를 따라 글을 쓰더란다.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아들의 동화 제목은 ‘남극 빙산의 전설’. “정말 놀랐죠. 아이가 내가 한 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 부모의 생활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차씨는 다음 달 KBS 대하드라마 ‘명가’ 촬영을 시작하며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작가 차씨는? 그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편을 또 마쳤지만 책으로 낼지는 결정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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